“아삭삭” 땅에 떨어진 나뭇잎 밟히는 소리는 마치 깊은 가을 같다. 하지만 한낮 태양은 아직 가을을 마중조차 할 기미가 없다. 그래도 이른 아침 공기엔 분명 여름의 아침과는 다른 향기가 있다. 가을이 온다. 계절의 바뀜 때문일까? 귀에 익지 않은 새소리에 일찍 잠이 깼다. 그 새소리 찾아 창문을 여니, 알싸한 찬 기운이 방 안 가득 들어온다. 밖에서 들어온 찬 공기는 따뜻한 방 공기와 섞여 그 향이 마치 갓 구운 시나몬향 도넛 같았다. 언젠가의 그곳을 떠오르게 하는 이 향기. 이 아침, 난 그곳에 가고 싶었다.
목적지는 애플 힐(Apple hill). 9월, 10월. 가을이 되면 동네 말고도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와 꽤 북적이는 관광지가 되지만, 지난 두 해는 그렇지 못했다. 2020년은 코비드로 모든 행사가 취소되거나 축소됐었다. 그리고 지난해는 Caldor fire로 이곳까지 위험하고 빽빽한 연기가 가득 차 예전의 애플 힐 축제와는 달랐다. 그리고 올해, 아직은 좀 이른, 그래서 사람이 그리 붐비지 않는 오늘 같은 날, 난 막 구운 시나몬향 사과 도넛을 먹으며 그곳에서 여유를 부려 보고 싶었다.
서두르면 30분 거리의 애플 힐. 갈 때마다 난 여러 길을 택해 가지만, 보통은 플레서빌(Placerville)에서 일단 속도를 줄여 그곳부턴 로컬 길을 따라간다. 플레서빌은 로컬로 빠지는 길목이기도 하지만 난 이 도시가 주는 느낌이 좋아, 잠시라도 들러 간다. 하이웨이에서 딱 한 블록 빠져나왔을 뿐인데 세월이 잠시 멈춘 듯한, 그래서 이곳에 가면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한땐 골드러쉬(Gold Rush)의 북적임이 있었고, 행 타운(hang town)이라는 섬뜩한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내 마음속의 이곳은 늘 평온한 주말 아침 같다. 오늘도 막 잠이 깨 기지개를 켜듯 이제서야 거리엔 이곳저곳 상점 안내판이 세워지고, 간간이 화분에 물을 주는 사람들 모습이 도넛 향기 따라 서둘러 나선 나의 나들이를 진정시켜 준다.
그곳부턴 칼슨 길(Carson rd.)을 따라갔다. 가을이 더 깊어져 천천히 그 가을을 느끼고 싶을 땐 캐년 길(Canyon rd.)을 따라 깊고 넓게 이곳을 즐겨도 좋다. 올 시즌 초반 서리 피해로 수확이 다른 해만 못하지만, 그래도 굽이굽이 과수원마다 한 해 고생한 농부에게 주는 메달처럼 사과가 달려 있다.
사과나무 사이를 걸었다. 아직 가을은 다 오지 않았지만, 군데군데 묻어 있는 가을 향에, 계획 없이 떠난 그곳에서 난 달콤한 가을을 만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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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혜 (전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