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시론 - 말

2022-09-13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크게 작게
‘말’을 사용한 명시조 한 편.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서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모든 통신을 말로서 하기 때문에 사람이 살아가는데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어려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주변(主辨)도 없지만 부끄럼을 너무 타서 특히 여자 아이하고는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나의 형님이 그것을 고쳐 주려고 여자 아이를 하나 택해 함께 바닷가에 가서 세 시간을 놀다 왔는데 내가 그 아이와 한 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았다고 해서 “너는 바보냐!”하고 소리 지른 일도 생각난다.

음악가 베토벤과 문학가 괴테는 절친한 친구였다. 그들 둘이서 산책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드렸다. 베토벤이 말하였다. “너무 많이 인사를 하니 산책도 하기 힘들군” 그러자 괴테가 말하였다. “자네가 오해를 하는군. 저 사람들은 자네를 보고 인사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인사를 하는 걸세” 괴테의 익살 맞은 말이 이긴 것 같다.


나 같이 말 잘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말 많이 해야 하는 목사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설교 원고를 써서 읽었다. 400자 원고지 열 장을 쓰면 정확하게 20분에 끝난다. 그러면 예배 전체를 딱 60분에 끝낼 수 있다. 원고지에 썼으니까 그대로 인쇄에 넘기면 책이 된다.

그래서 설교전집 23권을 낼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과 윤리학을 개발한 서양철학의 아버지이다. 그에게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부모와 교사와 어느 쪽이 더 중요합니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대답하였다. “누가 더 말을 아이에게 많이 가르쳤는지를 따져 봐야겠지요” 말을 가르친 사람이 가장 위대하다는 대답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질문도 받았다. “거짓말 잘 하는 사람이 받는 보상이 무엇입니까”, 그런 사람이 진실을 말해도 믿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명답이었다. 말에는 거짓말도 있고 왜곡된 말도 있다. 부풀린 말도 있고 축소된 말도 있다. 뻥튀기 말도 있고 간사한 말도 있다. 말을 잘 골라 하는 것이 소위 교양인이다.

명 정치가로 알려진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재주가 많은 사람으로 그림도 전문 화가 수준이었다. 한번은 마가렛 여왕이 물었다. “수상께서는 풍경화만 그리시고 인물화를 안 그리시는데 왜 그렇습니까?” 처칠 수상이 대답하였다. “사람을 그리면 닮았다니 안 닮았다니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무나 꽃을 그리면 군소리가 없어요” 말 조심을 해야 한다는 재치 있는 대답이었다.

말 못하는 언어 장애자가 얼마나 불편할까. 손짓으로 대화를 하는 수화(手話)가 있지만 표현의 수준이 많이 제한된다. 가르침도 설교도 대화도 모두 말에 의한 통신 방법이다. 말을 잘 하지 못하면 정치가는 될 수 없다고 한다. 정치뿐인가 장사도 법조인도 말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각 처에서 웅변대회를 열어 말의 발달을 도모한다.

일본 동경에 갔을 때 길거리서 만화를 그려주는 만화가 두 명이 있어 그 앞에 앉았다. 일본어를 못하는 척 하고 영어로 만화를 그려 달라고 했더니 이 녀석들이 이런 말들을 지껄이며 웃는다. “만화가 될 얼굴이 아니야. 이런 놈의 얼굴 만화나 그려주고 먹고 사니 우리 꼴이 말이 아니군”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면 별 소리를 다한다.

가톨릭교회는 신부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방이 있다. 그것도 서로 보지는 않고 말만 들을 수 있는 고회실이다. 설명도 이해시키는 일도 모두 말로 한다. 회개도 말로 표현해야 시원하다.

통신 혹은 교통을 뜻하는 영어 Communication 은 라틴어의 Communus에서 나왔는데 짐을 함께 진다는 뜻이다.
즉 교통이 잘 되려면 책임질 수 있는 진실한 말이어야 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