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탑승을 시작합니다

2022-09-13 (화) 이수진(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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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공항을 정말 내 집 드나들 듯하고 있다. 어릴 적 사람들이 나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어볼 때마다 별생각없이 “이곳, 저곳 여행하면서 사는 거요” 하던 게 씨가 된 걸까? 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평균적으로 매년 4번 정도의 해외 출장이 잡혀 있었고, 출장 후에는 늘 개인적인 여행도 잊지 않고 다녀왔다. 생각해보니 암흑 같은 코로나 시즌이 몰려오기 바로 전 해 가을에만 해도 무슨 힘으로 그랬는지 싱가포르 출장을 마치고, 추수감사절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기 위해 애틀랜타를 찾고, 쉴 틈없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한국에 다녀왔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탄 셈이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겠지만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짐을 챙기고 풀었다를 반복하고, 공항까지 기본 한시간은 이동해야 하고, 컨디션 조절을 잘 하지 않으면 시차 적응에 실패하는 것은 물론 심한 멀미나 몸살감기가 찾아오기 일쑤다. 기내에서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음식만 계속 입 안으로 들어오니 소화제는 기본으로 챙겨가야 하고, 가방이 무거울 때는 혼자서 선반에 올리거나 내리는 것마저도 버겁다. 그러다 보니 점점 긴 해외 출장이 두려웠고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스트레스가 몸에 쌓여버려, 이 경험을 최대한 즐겁게 만들 수 있도록 습관을 잘 만들어 놓아야만 했다.

공항엔 무조건 여유롭게 도착하는 것이 좋다. 간혹 예상치 못한 일로 차가 막히게 되어도 여유롭게 출발한 날에는 창밖의 경치를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대부분 공항은 그 나라의 문화에 맞춰 설계되어 있는데, 산책하듯 천천히 터미널을 걷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멋진 예술 작품을 보게 되거나, 마음에 꼭 드는 기념품을 구매할 수도 있는 즐거움이 있다. 여권과 신분증은 함께 지갑에 넣어 가방에서 꺼내기 쉬운 뒷주머니에 두는 것만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기내에서 영화는 어차피 졸음 없이 집중해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이미 재미있게 봤던 영화를 다시 틀어 놓는 것이 효과적이다. 커피보다는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이 훨씬 더 안정감을 주고, 귀마개를 쓰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숙면에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꼭 잊지 않고 이륙 전, 비행 중, 착륙 후 짧게 기도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습관이다.

오늘 밤, 나는 약 45일 동안의 다사다난한 한국 출장과 개인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세어보니 올해도 이미 총 아홉대의 비행기에 탑승했고, 앞으로 여섯 번의 비행이 더 남아있다. 3주 후 다시 싸게 될 짐을 하나씩 풀어가며 마음속으로 이미 다음 탑승을 준비해본다.

<이수진(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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