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기온이 차이가 난다. 밤에는 추워지고 낮에는 무덥다. 강렬한 태양빛으로 하늘도 파란빛을 잃었다. 점점 더위와 타협을 하지 않고 자기만의 고유의 색을 잃어간다.
낮엔 매미가, 밤엔 풀벌레 울음소리가 한계절 짧은 소리로 자신을 알리는 벌레소리에 가을이 왔음을 이미 말해주는데 여전히 낮은 덥다. 올해는 여름이 빨리 가려나보다. 해가 짧아지고 추석도 빨라지니 절기상으로 입추가 지난지 오래됐으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도 당연하다 .
해마다 고향 방문으로 부모님을 뵈어야한다던 생각은 요즘 상황에서 가고 싶어 갈 수 없는, 보고싶어 볼 수 없는 내 마음의 보석상자처럼 멀고 먼 고향이 되고 말았다 .
언제면 상자를 열어볼 수 있을까 늘 생각만 하는 날들이다. 해마다 부모 형제 보러 간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힘차게 살아온 나날들인데 가지 못했던 삼년은 답답하고 감정적으로도 힘이 들었던 시간들이었다.
부모 형제들이 보고 싶어도 그리움과 궁금함에도, 꾹꾹 삭이며 이겨냈다. 몸은 지치고, 정신은 늘 쫓기니 긴장상태고 마음은 어느 것 하나 편안하지 않은 시간들, 누구나 힘들었던 시기지만 여전히 시간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참 ~ 긴 시간을 잘 이겨냈다. 많은 시간이 누구에게나 흘러갔다. 우리에게 삼년은 길었지만 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숨죽여 살아 온 긴 세월이 지나고나니 가버린 시간은 짧은 시간이 되어 삼년동안 점점 노화가 진행되었을 어머니를 생각하게 한다.
여전히 쉽지 않은 고향 방문이지만 노모가 딸자식이 그립다고 오라는데..자영업자들이 모두들 어려운 시기인만큼 나도 예외는 아니라 노모는 어려우면 비행기표만 사고 오라시는데, 영양제 사주고 병원 데리고 가서 비타민 주사도 맞춰 주신다는데, 늘 어머니는 미국서 살아가는 피로에 쌓인 딸이 마치 영양주사라도 맞으면 그동안의 피로를 푸는 것쯤으로 알고 계시니 그런 노모의 마음은 60대 딸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은 태생부터 엄마에게 있는 아가페적인 모성같은 것이리라 .
딸 자식을 낳으면 비행기 탄다고 미국을 자주 오셨을 때만해도 나만큼 젊은 나이에는 걷는 것도 불편함을 모르시더니 이젠 90살을 바라보는 나이이시니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걸 실감하신다니 그래도 마음은 젊은데 왜 이리 빨리 나이먹었는지 모른다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돌아봐도 친척이라곤 없는 사고무친, 이 뉴욕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큰 딸이 보고 싶다 하시니 어찌 산사람 소원을 못 들어드릴까? 나도 많이 뵙고 싶은데, 가족들과 추석을 지내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성묘는 못 찾아뵐지언정. 색 바랜 나뭇잎들도 낙엽이 지고 온 만물들이 겨울나기에 동면하려고 땅속에 집을 지을 때쯤 난 고향으로 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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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김/롱아일랜드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