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엄마와 아들이 놀이공원에 갔단다. 엄마가 앞장서서 매표원에게 큰소리로 외쳤단다. “어른 하나! 애들 하나요!” 매표원이 되물었다. “애가 몇 살인가요?” 이 엄마 잠시 망설이더니… “글쎄~ 내 아들이 이제 70이 됐나? 안됐나?” 했답니다.
모든 자식들은 엄마의 둥지에 담긴 새끼일 뿐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본 모성애의 극치 장면을 봤다. 둥지 안에는 알에서 깨어난 연하디 연한 살색에 뼈만 앙상한 박새 새끼들이 짹짹거리며 어미새를 찾고 있었다.
한 마리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둥지를 향하여 미끄러져 들어왔다. 먹히기 직전, 그 절명의 순간에 나타난 어미새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본능적으로 구렁이의 머리통을 부리로 내리 찍었다.
물러서지 않는 구렁이 위로 어미새는 수직 상승했다가 작은 몸무게의 중력을 보태어 수직 낙하함과 동시에 뱀의 머리통을 그대로 가격하는 어미새는 가히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말로 하면 그 어미새는 틀림없이 뇌진탕으로 즉사했을 것인데… 작은 새의 모성애가 위대 했다. 이 모성애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엄마라면 필수적으로 가진 무기가 모성애이다.
이 모성애가 새끼들의 교육과 연결되면 틀림없이 치마바람을 일으킨다. 미국 엄마들의 치마바람도 대단했다. 언젠가 업스테이트 베어 마운틴 자락에 있는 웨스트 포인트에 있는 미국 육군 사관학교를 관광을 했을 때에 들은 교수 부인들이라는 안내원에게서 들은 얘기였다.
늠름한 아들들이 사관 생도가 되었는데 어미새는 빈 둥지를 쳐다만 볼 수 없어서 아예 텍사스 안토니오에서, 캔사스에서 뉴욕 사관학교가 내려다 보이는 허드슨 강 건너 언덕까지 날아온 어미새들이 있다고 했다. 이 엄마들은 허드슨 강 건너 언덕 위의 주택 에서 종일 망원경을 통해서 새끼들의 동태를 살폈다고 했다.
미국 치마바람의 대표로는 단연 메리 핑키 라는 맥아더와 아이젠하워 생도의 어미새들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일거수일투족을 지켰지만 새끼새들은 몰래 학교를 벗어나 베어마운트 산장 호텔의 바에서 맥주 마시고 담배 피우다가 들켜서 벌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 뉴욕의 어미새들도 멀리 대학으로 날아간 새끼새들이 남기고 간 빈 둥지들만 바라보는 계절이 되었다. 창조주 하나님을 이해할 만한 잉태와 출산과 양육의 특권을 누린 어미새들이 분신 같은 새끼들을 떠나 보내고 허탈감에 빠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 방을 봐도, 저 방을 봐도 남기고 떠난 새끼들의 빈 둥지들 뿐이다.
온 몸에 기운이 돌지를 않는다. 전신에 힘이 없어졌다.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른다. 그리고 정신이 멀리 떠난 새끼들 만이 눈앞에 어른거릴 뿐이다. 매사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늘 엄마 품에 끼고 살았던 새끼들이 날개 짓을 하고 멀리 날아가 버릴 때 성숙한 어미 새들은 즉시로 빈 둥지를 헐어버린다고 한다. 분신같은 새끼들이 다시는 어미 곁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결단의 조치를 한국 어미새들이 배워야 할 계절이다.
일상을 해치는 심각한 정신적인 공허 상태가 일어날 때 징조를 Empty Nest Syndrome이라고 한다. 다 자란 새끼들의 빈 둥지를 바라보며 남겨진 어미새의 아픔- 빈 둥지 증후군이 심하면 우울증과 자아 상실증까지 겹쳐서 공황장애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자식이 떠난 것이 아니라 엄마들 자신의 정체성이 빠져나가 버린 상태가 빈 둥지 후유증이다. 이제 엄마들은 과감하게 연결되어 있는 어미와 새끼들의 탯줄을 믿음으로 잘라버려야 한다. 이제 어미 새들도 스스로 삭발을 하고 속세를 떠나는 수도승처럼 모자간의 결별을 선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수요일 오전에 홀로 남은 어미 새들을 모아 ‘어머니 기도회’를 오픈한다. 외로운 어미새들이 함께 빈 둥지를 함께 불태워 버린다. 목청 높인 찬양의 불속에서 눈물로 부르짖는 기도의 불꽃 가운데서 새끼들의 빈 둥지는 타버리고 더욱 더 든든한 새끼새들의 인생의 별장들이 나타난다.
이제도 홀로 빈둥지 깊은 못에 허우적 거리는 세상의 어미 새들이여 여기 당신들을 부르는 초청장이 도착했다.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이사야서49:15) 엄마도 더 크고 더 높은 아버지께서 우리 어미새들을 지금도 기다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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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열/뉴욕센트럴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