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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꾼’이 필요해

2022-09-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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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청은 성인을 추대하는 과정에서 그 후보자가 성인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를 강하게 제시하는 반대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지정해왔다. 이 사람은 자신의 악역을 통해 교황청 내부의 의사결정이 일방적으로 흐르거나 잘못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은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악마의 변호인’은 종교적 배경에서 탄생한 역할이지만 조직에서 흔히 나타나는 집단사고의 위험을 경계하고 최고 의사결정자의 독단과 오류를 바로 잡아주는 사람을 뜻하는 보편적인 어휘가 됐다. 아무런 견제나 반대의견이 없는 조직은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쉽다. 집단은 원래 확증편향에 빠지기 쉬운 데다 설사 다른 생각이나 의견이 있다 해도 전체적인 분위기에 눌려서 입을 닫아 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악마의 변호인’ 제도를 만든 교황청은 역설적으로 견제와 반대가 사라진 조직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꼽히고 있다. 지난 1983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악마의 변호인’ 제도를 없애 버렸다. 이후 교황 재위 20년 동안 이전 교황들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복자’들과 ‘성인’들이 양산됐다. 성인의 경우 무려 482명에 달했다. 견제와 이견과 사라지면서 ‘성인’의 기준이 턱없이 낮아져버린 것이다.


이런 폐해를 막고 보다 균형 잡힌 결정을 도출하기 위해 많은 조직들은 교황청의 ‘악마의 변호인’과 같은 역할을 해 줄 사람을 임명하거나 그런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미군이 만들어 운용해오고 있는 ‘레드 팀’(Red Team)이 대표적이다.

‘레드 팀’은 상황 시뮬레이션과 취약점 조사, 그리고 대체분석 등을 통해 자신과 적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 이런 분석들을 통해 획일화된 명령체계를 갖고 있는 군 의사결정 과정의 취약점을 보완해 주는 것이다. ‘레드 팀’ 운용은 이제 군을 넘어 일반 기업들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취임 4달째인 윤석열 대통령이 유례없이 낮은 임기 초 국정 지지율로 크게 고전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국정과제 수행에 필요한 동력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초래한 데는 윤 대통령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는 취임 후 자신의 발언들을 통해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지속적으로 드러내 왔다. 인사 참사 지적에 반응하는 과정에서도 그랬고 수해참사 현장에 나가서 한 발언들에서도 이런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대통령 자신은 이런 문제점의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이런 인식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자화자찬의 연속이었다.

대통령이 현실과 동떨어진 어린 인식을 보이면 이것을 바로 잡아줘야 하는 것이 참모들의 역할임에도 윤 대통령 주변에 과연 그런 참모가 있기는 한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참모라는 사람들이 오로지 대통령을 위한 변호와 변명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윤 대통령이 인적쇄신을 내세우며 가장 먼저 한 일은 홍보라인 강화였다. 여전히 그 자신이 아닌 홍보 부족을 문제의 본질로 여기는 것 같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 밝혔듯 진정 국민들의 숨소리에까지 귀를 기울이겠다면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참모들에게 먼저 쓴소리를 청해야 한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포장꾼’이 아니라 ‘쓴소리꾼’이다.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열린 마음으로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해줄 팀을 만들고 참모들의 개인적인 의견도 열심히 청해야 한다. 쓴소리에 귀를 열지 않는 한 지지율 회복은 난망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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