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이 비천한 사생아 출신의 에바, 또는 에비타는 1919년 아르헨티나와 접경한 파라과이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훗날 세계 최연소 영부인 에바 페론이 된다. 그녀는 실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34세의 젊은 나이에 드라마틱한 영화주인공처럼 죽었으니 말이다.
그녀가 생전에 아르헨티나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신이 빈민층 출신이라는 점을 당당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흥행한 뮤지컬 ‘에비타’-이 명칭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그녀를 누나처럼 언니처럼 딸처럼 불렀던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아르헨티나 서민들의 편에 서서 빈곤과 싸우며 그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았던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데 페론(Maria Eva Duarte de Peron)- 그녀는 어쩌면 전세계 영부인의 롤 모델일지도 모른다. 마치 한국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던 고 육영수 여사와 오버랩 될 수 있는 인물이다.
에바 페론, 사람들은 그녀의 남편이었던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나를 위해 울지 말라, 아르헨티나여(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제목의 감미로운 멜로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얼마나 모든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았는지, 열성 지지자들은 그녀를 성녀로 지정해 달라고 로마교황청에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이 대통령 부부의 만남 스토리를 보면 소박하면서도 아름답다.
1944년 산후안 지역에서 발생한 큰 자연재해로 수천 명이 죽는 대형 참사가 있었다. 이 때 노동부 장관이던 후안 페론과 이재민 구호를 위해 현장을 찾아 온 에바가 처음 만나게 된다. 첫 번째 부인을 잃고 독신으로 살던 페론 장관과 에바의 만남은 순수하고 투명해서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러브스토리다.
그런데 한국의 신임 대통령과 영부인의 스토리는 전국민의 성원과 애정을 얻기에 미흡한 부분이 좀 있다. 김건희 여사는 서울 변두리 명일동 출신이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 지역에서 숙박업을 했다고 한다. 김건희씨는 1972년 생으로 당시 노총각이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2012년 3월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전 살아온 과정속에 학력 및 논문 논란 등 가십거리와 구설이 적지 않다.
그녀는 결혼 전에 코바나 콘텐츠라는 미술 전시기획 회사를 차렸다고 한다. 그러나 기획한 유명 전시회와 공연들이 성공하면서 구설에 올랐고, 남편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회사의 주주총회를 통해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당분간 적극적 사적 행보 없이 조용히 내조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얼마전 김건희 여사가 다시 공개 행보를 시작했다. 울산 ‘정조대왕함’ 진수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방한 기념 만찬식에도 참석하면서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나토 정상회의 참석후 돌아와 거의 한 달만에 나온 것이다.
나토 정상회의 순방에서 그녀가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사적인 관계의 지인들을 대동한 행보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김건희 여사의 일정을 돕는 등 사실상 제2부속실 직원 역할을 수행했다는 의혹이었다.
고구려 제25대 평원왕의 첫째 딸인 평강공주는 바보 온달과 혼인한 뒤 눈먼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남편을 훌륭한 장수로 키워냈다. 그녀가 회자되는 이유는 비록 하급 귀족 신분에 속하지만 뛰어난 무사이던 온달의 잠재력을 꿰뚫어 보았다는 점 때문이다.
과연 김건희 영부인은 자신의 부족한 출신 배경을 콤플렉스로 생각할까, 아니면 서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동력으로 사용할까. 종말을 비참하게 맞은 민비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 라고 외쳤다. 하지만 국민들로부터는 조롱당했다. 그런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김건희 여사는 부디 에바 페론처럼 두고두고 사랑받는 영부인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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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