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여 년 동안 인간을 포함한 자연 만물에게 백해무익한 악영향을 끼쳐온 ‘만물의 영장’이란 ‘선종(選種)의 인종주의(human speciesism)’ 그것도 백인위주의 인종차별(white racism) 과 남성위주의 성차별(sexism), 그리고 원죄의식(guilty of original sin) 과 선민사상(選民思想/시온주의 elitism /Zionism as ‘Chosen People)은 예수의 가르침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아니 그 정 반대로, 독선, 위선의 독단적 도그마(dogma) 로 지구 생태계를 파괴해 극심한 기후변화를 초래하고 자본주의 물질문명으로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며 비백인 거의 전 인류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노예화해 온 기독교의 부정적인 해독성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만큼은 동화적인 분위기로 잊혀가던 우리 모두의 동심을 일깨워주지 않는가.
그러니 ‘동심(童心)은 곧 신성(神性)이다‘ 고 해야 하리라.
‘동심’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인생을 관통하는 삶의 도라고 할 수 있다. 안데르센 동화 ‘황제의 새옷’에 등장하는 어린애와 생텍쥐페리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 같은 동심 말이다.
1994년 미국에서 출간된 ‘어린이들에게 종교가 필요한가?’라는 책이 있다.
가톨릭 신자였던 저자 마타 페이(Martha Fay) 는 이 책에서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그리고 흰 색인지 검은 색인지, 죽음과 천국은 무엇이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등 에 대해 묻는 (그 당시) 열 살짜리 딸 안나(Anna) 에게 자신이 엄마로서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하늘에 하늘님이 계시고 땅속에 땅님이 계신다면,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늘님과 땅속에서 솟아오르신 땅님이 바로 어린 아이들이 아닐까. 어린이들이 사는 곳이 바로 천국인데, 공중에 무슨 천국이 있으며 지하에 무슨 지옥이 있겠는가.
어른이 어린애처럼 되려면 필요한 것이 종교다. 그래서 어린이는 종교의 교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전도를 하고 설교를 한다는 것인가?
나는 어린이가 곧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예수도 우리가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어린이에게는 참도 거짓도, 선도 악도,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옳고 그른 것도, 남자도 여자도, 너와 나도 따로 없다.
동물, 식물, 광물도 다 같은 하나가 아닌가. 하나님이 ‘하나님’이라면, 작다는 뜻의 ‘아리’를 붙여 ‘하나아리님’도 곧 어린 코스미안이라 해야 하리라.
라틴어로 ‘Finis Origine Pendet’란 말이 있다. 영어로는 ‘The beginning foretells the end.’ 우리말로는 ‘시작이 끝을 말해 준다’로 ‘시작이 반이 아니라 전부다’란 뜻이 되리라.
동심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게 꽃 천지요 별세계다. 돌도 나무도, 벌레도 새도, 다 내 친구요 만물이 다 나이며, 모든 것이 하나이고, 어디나 다 놀이터 낙원이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요술쟁이 어린이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일찍이 중국 명나라 때 진보적 사상가 이탁오(李卓吾), 영어로는 Li Zhi (1527-1602)는 그의 대표적 저술로 시와 산문 등을 모아 놓은 문집 ‘분서(焚書)’에서 말한다.
“어린아이는 사람의 근본이며 동심은 마음의 근본이다.
동심은 순수한 진실이며 최초의 한 가지 본심이다.
만약 동심을 잃는다면 진심을 잃게 되며, 진심을 잃으면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을 잃는 것이다.”
<
이태상/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