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려되는 전 근대적인 미국 선거관리제도

2022-05-16 (월)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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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행정부와 의회를 가장 먼저 선거로 구성한 나라다. 물론 초기 유권자들은 백인 남성들 만이었지만 남북전쟁 후 1870년 2월에 비준된 수정헌법 15조(투표권)가 통과되면서 흑인 남성들도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흑인 참정권 비준으로 남부에서 14명의 흑인 연방하원의원과 2명의 흑인 연방상원의원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1877년 남북 전쟁이후 ‘남부 재건’을 위하여 배치되었던 연방군이 떠나자 남부는 노예 해방 이전으로 되돌아갔고 흑인 참정권은 박탈당했다. 그리고 목숨을 건 흑인 민권운동을 통하여 1964년 민권법을 통과시키면서 마침내 참정권을 회복하였다.

여성에 대한 참정권은 1920년 통과된 수정 헌법 제19조에 의거하여 주어졌다. 이것은 1844년 6월 자유당이 대선을 위해서 ‘여성 참정권’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76년동안 수많은 여성들이 투쟁을 하면서 획득하게 되었다. 선거에 의한 행정부와 의회를 구성하는 제도를 가장 먼저 시행하였지만 미국시민 전체가 투표권을 가진 것은 대부분의 나라보다 늦은 1964년이나 되어 이루어졌다.


문제는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의 선거제도가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권자 자격이 없는 불법 이민자들이 자신을 반대하고 민주당을 지지하기 위해서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에 참여했다고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이 말을 믿고 수천 명이 의회를 폭력적으로 점거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미국은 유권자 등록을 해야 투표를 할 수 있다. 이것을 관리하는 기관은 각 주의 카운티 선관위다. 그리고 선거 날 각 선거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당을 받는 임시직들이다. 카운티 단위의 선거는 카운티의 범위를 넘어가는 주 전체와 대통령 선거를 일사불란하게 진행하고 명확한 책임을 묻기가 애매하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고 조사를 끝내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유권자 등록도 문제가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고 자기 주소지 이외 옆 카운티에 유권자 등록을 해도 찾을 방법이 없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를 했는데도 선거 당일 선거인 명부에서 누락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만약 이런 맹점들을 가지고 대선 후보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면서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2000년 대선에서 플로리다 팜비치 카운티 투표용지의 심각한 결함으로 개표가 중지되었다. 전통적 민주당 텃밭이었지만 팜비치 카운티만 독자적으로 사용했던 투표용지의 디자인으로 앨 고어를 찍었지만 실제로는 개혁당의 뷰 캐넌을 찍는 일이 발생했다. 근 한달 동안 시비가 있었지만 공화당 조지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제브 부시 주지사는 조지 부시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때 알 고어 후보가 승복하지 않았더라면 심각한 분열로 갔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부정선거로 졌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금 공화당 텃밭에서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신이 점찍은 후보들을 당의 예비선거에 당선시키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의 추세라면 아마도 무난하게 2024년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될 것이고 다시 한번 미국의 전근대적인 선거제도는 심각한 도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우려가 되는 것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미국의 선거제도를 개혁할지 아무도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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