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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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신비

2022-04-30 (토) 양벨라 / 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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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사월의 꽃비가 내리는 날, 61년을 한국에서 보낸 푸른 눈의 사제가 선종하셨다. 1956년 새파랗게 젊은 21살의 미국 청년이 실습자 신분으로 한국에 파견됐다. 그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 신학대학을 마치자마자 전쟁 후의 비참한 한국을 잊을 수 없어 자원해 다시 오셨다. 그리고 집이 없고 부모가 없는 근로 청소년들의 친구요 아버지가 되셨고, 지난 4월13일에 낡은 몇 벌의 옷을 남기고 빈자의 모습으로 하늘의 집으로 떠나셨다. 장례미사를 마친 후에 거룩한 시신은 기증되어 의과대학으로 보내졌고, 그를 만나본 사람들 가슴에 별을 하나씩 남겨놓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표로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도해주는 나침반 같은 길을 보여주셨다.

한국 이름은 노숭피 신부님.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 “로버트 로 자에, 원숭이 숭, 커피 피 자입니다”라고 하셨고 숭늉을 너무나 좋아하셔서 후일 숭늉 숭에 커피 피로 함자를 바꾸셨다. 늘 가난한 한국 사람들의 관대함에 감동을 했다고 오히려 감사하였고, 젊은이들에 둘러싸여 살게 되어 은총이라고 하셨다.

신부님이 아이들을 선도하는 방법은 그저 즐겁고 웃게 하는 것이었다. 스포츠를 통해 한 팀이 되어 운동하고 땀에 흠뻑 젖어 아이들이 행복해 할 때 그도 행복해 했다. 결코 잘했다 잘못했다로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좋아요! 괜찮아! 참 좋았다!“를 입에 달고 사셨다.
각자 삶의 소명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나 어디에나 행복과 웃음이 있고 다른 향기와 다른 아름다움이 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라고 하셨다. 좋은 가정에서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던 미국 청년이 일생을 바쳐 한국인에게 헌신한 것 또한 신비롭지 않을 수 없다.


때로 주어진 환경이 험난하지만 하나하나의 고통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깨우쳐주셨다. 비행 청소년과 구치소 등에서 온 아이들도 놀랍게 변하였고, 기술을 배우고 나가서 자립할 수 있었다. 그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길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 섭리라고 하셨다.

노 신부가 생전 가장 좋아했던 성경 구절은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코린토1서 13장 2절)였다.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고,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증명하신 분. 지상에서 이런 분을 만난 행운에 감사하며 사람이 어떻게 죽을 때까지 남을 위해 살 수 있는지 그 의문이 풀리는 삶의 신비를 보았다. 앞으로 우리는 이분의 뜻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이것이 숙제로 남았다.

<양벨라 / 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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