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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정책의 말로

2022-04-29 (금)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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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의 정책은 모든 사람을 다 같이 잘살게 하는 정책이다. 한 국가 내에서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고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을 잘살게 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파레토 개선(Pareto Improvement)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이러한 파레토 개선이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이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서로 다른 견해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정책이 좋은 정책인가.

일단 정책으로 혜택을 입는 사람들의 숫자가 손해를 보는 사람들보다 많아야 한다. 하지만 모든 정책이 이렇게 사람 숫자만 가지고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는 없다. 다수가 이익을 얻고 소수가 손해를 보지만 이들의 손해가 아주 크거나 사회 통념상 허락할 수 없는 손해나 희생일 경우 나쁜 정책이다. 또한 이익이나 손해를 단기적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수에게 이익을 주는 정책이라도 이 이익이 몇 년 가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적인 손해를 끼치게 하면 나쁜 정책이다. 확장적 복지 정책으로 국민의 환심을 사지만 이로 인한 재정 파탄으로 나라가 망가지는 포퓰리즘이 대표적인 예이다. 반대로 소수에게 이익을 주는 정책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다수의 이익을 늘릴 수 있는 좋은 정책도 있다. 일부 핵심 산업에 대한 공공 연구개발(R&D) 투자는 다른 지출 항목을 줄여야하거나 단기간의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좋은 정책의 예이다. 따라서 정책을 입안할 때는 이러한 눈에 띄지 않는 구석구석을 다 살피고 정책이 미칠 장기적 영향까지 연구해야한다. 또한 이 정책으로 피해가 갈 사람들이 있는지를 검토해 이를 위한 부가 대책까지도 마련해야한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검수완박은 여야 모두가 일조한 대표적인 졸속 정책이고 위에서 언급한 나쁜 정책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우선 다수의 일반 국민이 피해를 보고 소수의 권력자만 이익을 본다. 몇몇 문재인 정부 사람들을 위해 입안된 정책이고 국회의원의 비리를 수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자기들만을 위한 정책이다. 또한 정책이 미칠 파장에 관한 분석이 전혀 없었다. 강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주도하에 제대로 된 공청회나 법안의 효과에 대한 논의 없이 이번 정권하에 통과시켜야한다는 목표 아래 처리되는 졸속 법안이다. 구청에서 가로수를 하나 옮길 때도 이 정책이 미칠 효과에 대해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다른 관계 부서와 협의, 심사숙고해 결정한다. 이번 검수완박 정책은 이보다도 못한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따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유행한 말 중 떼법이라는 게 있다. “떼를 써서 만든 법”이라고 해석된다. 소위 ‘국민 정서’가 헌법이나 실정법보다 중히 여겨지는 상황을 비꼬는 말이다. 문제는 이 국민 정서가 국민을 대표하는 게 아니고 소수의 이익 집단이나 강성 여론 몰이 세력이라는 데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안은 대부분 졸속 처리된다는 특징이 있고 따라서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민식이법이 그 예이다. 스쿨존 사고는 단순 과실 사고라도 음주 운전 사고와 같은 수준으로 처벌받게 한 이 법은 여론에 밀려 제대로 된 공청회 하나 없이 졸속으로 통과됐고 헌법에서 규정한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배하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 음주 운전을 2회 이상 했을 때 가중처벌하는 윤창호법은 헌법재판소에서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위헌 결정이 났다. 타다 금지법도 마찬가지이다. 택시 기사들의 단체 행동에 밀려 통과된 타다 금지법으로 결국 플랫폼 운송 사업의 발전이 막혔다. 돈을 더 내더라도 고급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은 소비자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방역 제한이 풀린 지금 밤마다 택시 잡기 전쟁을 벌이는 시민들이 그 피해자이다.

이번 검수완박은 이를 추진하는 민주당뿐 아니라 만약 국민의힘이 이를 합의해 추인한다면 국회의원 모두가 저지르는 나쁜 졸속 정책의 표본이 될 것이다.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정책은 당장 자신들에게 이익이 갈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피해가 가는 정책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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