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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단상(斷想)

2022-04-10 (일) 정해철 / 볼티모어 한국순교자천주교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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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시기도 이제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사순시기는 그리스도교 최대의 축제일인 부활 전 40일을 일컫는다. 사순절은 부활 대축일 전 40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 사순절은 원시 그리스도교 때부터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신자들에게 부활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더욱 거룩하게 지내도록 강조하였으며 지금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순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조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기도, 단식, 자선이다. 이 세 가지가 사순절에 지켜야 하는 제일 중요한 덕목이고 실천 사항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사도들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중요한 실천 사항이다.

가톨릭 교회는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미사에서 신자들에게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거행한다.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은 구약성서에서부터 비롯되었던 양식이다.
사제는 신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으면서,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지어다’ 혹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라고 말한다. 사순절의 시작을 알리면서 좀 더 경각심을 가지고 기도 생활에 더욱 충실하기를 바라면서 하는 예식이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권고 형태로 제시됐던 단식은 3세기에 이르러 전례적·성사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신학자 히폴리투스가 215년에 쓴 ‘사도 전승’에는 예비신자들이 금요일 단식을 지켜야 했고 모든 신자는 성찬례 잔치에 참여하기 전에 음식을 멀리해야 했다고 전한다. 부활 전날에는 하루종일 단식을 해야 하며 토요일에는 빵과 물만 먹는 부분 단식을 권장했다.
4세기에는 사순 시기와 그에 따른 사순 단식이 공적으로 정착됐다. 325년 니케아공의회는 사순 시기를 40일로 정했다. 당시 신자들은 사순과 대림 시기에 단식을 했다.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신앙인들에게 요구되는 정화의 기능은 단식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
특히 음식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는 극도의 절제된 생활을 했던 수도승의 단식 전통은 단식을 통해 어떻게 내면을 정화시킬 수 있는지도 알게 한다.


가톨릭교회는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는 교황님을 포함한 주교, 사제, 신자들이 단식하기를 강하게 권고한다. 단식을 지켜야 하는 사람은 만 21세에서 60세까지의 건강한 신자들이다. 노약자나 임산부, 환자나 힘든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과 특별히 허락된 사람은 단식의 의무에서 제외된다.
또 단식일이라고 하여 온종일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한 끼의 식사는 충분한 양을 섭취하도록 하고, 아침과 저녁 식사도 가볍게 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단식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여하며, 자기를 이기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다. 따라서 단식으로 절약된 양식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데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사순절에 단식을 하는 근본 이유는 다름이 아닌 자선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단식이 단식으로 끝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단식을 통해서 절약한 물질이나 재화를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는 자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도는 개인의 성화를 위해서 바치는 것이라면 단식과 자선을 철저하게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기도 역시 개인만을 위해서 한다면 이 또한 의미가 없다. 기도 역시 공동체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기도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순절에 3대 덕목과 실천 과제는 모두 자신 뿐만 아니라 공동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개인이 구원되는 것보다는, 모두가 구원되기를 바라신다.

따라서 개인 가지고 있는 신앙 역시 구원의 연대성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나 혼자만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서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 혼자만 단식을 많이 한다고 해서 구원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아니다.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이웃이 있어야 하고 단신을 통해 자선을 베풀 이웃이 있어야 나의 거룩함과 신앙의 깊은 뜻을 알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사순절에 최선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면서 기도, 단식과 자선을 실천하는 사순절이 되었으면 한다.

<정해철 / 볼티모어 한국순교자천주교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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