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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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 화풍진진, 스스로 느끼자

2022-04-0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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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오는 봄을 느껴보려고 3주 연속 주말마다 브롱스 뉴욕식물원으로 갔다. (더 큰 이유는 3월말 식물원 멤버십이 끝나기 때문). 에니드 A. 홉트 컨서바토리 온실에서 열리는 ‘오키드 쇼’를 3번 보고 야외 트램을 돌면서 봄이 열리는 소리와 몸짓을 만나고자 했다.

처음엔 메마른 가지에 싹이 움찔움찔 나오는 감을 주더니 두 번째는 드디어 연두빛 몸을 살짝 보여주며 물오른 가지에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세 번째는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 버들강아지, 제법 살이 오른 새싹, 연분홍 벚꽃이 날리면서 온 천지가 봄을 용틀임 하고 있었다.

그리고 4월이다. 완연한 봄, 봄이다. 노란 개나리와 수선화, 보라색 히아신스, 백목련과 자목련 등 걸음걸이마다 일제히 꽃망울이 터지면서 다채로운 색과 향의 잔치가 열리고 있다.


뉴욕식물원에서는 오키드쇼보다 보통 때는 관심 없던 선인장에게 이끌렸다. 아메리카 및 아프리칸 사막 식물원에서 자라는 선인장들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450여 종의 건생 사막식물로 구성된 아메리카 및 아프리카 사막식물원은 아프리카 사막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멸종위기 식물을 수집하고 보전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선인장은 일반적으로 건조하고 더운 기후에 자라는 사막식물로 대개 잎이 없고 다육질의 큰 줄기가 특징이다. 작고 예쁜 꽃을 피우는 타입부터 대형선인장까지 그야말로 2,000개가 넘는 종류가 있다. 오채각, 용신목, 대운각 등 큰 것은 사람 키 이상으로 자라는 대형종으로 굵고 짧고 많은 가시가 돋아난다.

기둥 선인장은 가시가 작은 품종으로 브라질 북동부가 원산지이며 관상용, 그림 소재로 많이 이용된다. 산세베리아 종족인 스투키는 북아메리카 사막이 원산지로 뾰족하니 키가 크고 공기정화 기능이 있다.

그 외 가시가 흰털처럼 빡빡하고 촘촘한 환락, 멕시코가 자생지인 구형 또는 원통형인 만월.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원산지로 가시가 얇고 밝은 황색인 금황환 등등이 있다. 소형종 중에는 잎과 줄기가 두터운 육질로 가시가 없는 관상용이 많다.

하지만 선인장은 가시가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선인장의 가장 큰 특징은 가시이다.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 살기 적합한 가시의 기능은 수분 증발을 최소화 한다. 또한 가시는 사막에서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겼다. 가시가 있으면 동물이 먹기가 쉽지 않다.

크고 억센, 날카로운 가시를 보면 저 선인장은 누구를 찌르려고 하는 것인지, 완전무장한 그 이유가 궁금하다. 더욱이 20세기 식물학자 루터 버뱅크의 ‘가시 없는 선인장’ 실험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는 집게로 선인장의 가시를 뽑아주면서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고 한다. ‘내가 너를 잘 보살펴줄 게, 이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이제 가시 따위는 필요 없단다.“ 오랜 시간후 마침내 가시 없는 선인장 실험에 성공했다니 만화 같은 이 이야기는 식물에게도 영혼이 있으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것인지.

사람도 가시를 지닌 경우를 본다. 내뱉는 말마다 가시가 돋혀 있어 듣는 이를 아프게 한다. 그런데 왜 그 사람은 가시를 지닌 것인지. 아마도 어려서든, 가정환경에서든 많이 아팠고 상처받은 사람 일게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시를 키웠을 것이다.

봄은 왔지만 아직도 음울한 겨울 속에 있는 이들이 적잖다. 3년에 걸친 코로나 팬데믹에 멍들고 상처 입은 사람들, 가시를 지닌 그들에게도 봄바람은 분다. 추사 김정희의 서간문에 나온 ‘화풍진진(花風陳陳)’, 이 단어는 꽃바람이 연이어 부니 꽃들이 우르르 피어난다는, 봄이 무르익는다는 뜻이다.

봄 춘(春)은 중국고대문자인 갑골(甲骨)문자에서 나왔다. 춘(春)이란 글자를 위에서부터 뜯어보면 초목의 새싹이 올라오고 햇빛이 비치는 그림이다. 봄은 조물주나 봄바람이 만들지만 나는 스스로 느끼면 된다. 꽃바람과 태양, 해로부터 주어지는 새로운 기운을 만끽하자. 공짜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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