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일 오후1시 저지시티 시청내 의사당에서 윤여태 전 시의원 2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윤 의원은 오래 전부터 뉴저지의 불모지인 저지시티에서 다민족을 상대로 여러 도움을 주었다.
윤여태씨가 그곳에서 주류 멤버들을 젖히고 시의원으로 당선되었을 때 뉴욕지역 한인들은 참으로 반가워했었다.
저지시티는 원래 매우 후진적 미개발지역이었다. 맨하탄 월가의 맞은편에 자리하며 주로 페리(수로 배편)로 내왕했다. 맨하탄에 근무하는 많은 뉴욕시민들에게 렌트 저렴한 곳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몇 년 사이에 신도시 고층빌딩으로 개발 되었다.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윤 전 의원이 정착 했는데 시의원 출마 당시 한인 6명이 투표 했었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면학 후 남 돕기를 즐거워한 윤여태는 메트로폴리탄 여러 곳을 다니며 코리안 아메리칸의 위상을 위해 각종 행사에 참여 해왔다. 한인들에게도 다민족과 관련된 모임을 권장해 왔다.
필자는 사랑의 터키 보내기 운동을 할 때 알게 되었다. 터키(칠면조)를 저렴하게 구입하는데 그는 힘을 보태었고 다민족 특히 저소득층 분배를 간곡히 부탁해왔다. 매년 터키를 전달하면서 상호 매우 밀접하게 지났다.
저지 시티에서 군복제조공장을 하는 김사장도 매년 거금을 기부, 전달했으며 지금도 매년 200마리의 터키를 전달한다. 36년간 지속된 터키 전달을 앞으로도 계속 저지시티에 전달할 것을 약속한다.
그런데 이 일을 함께 하던, 아직도 계속 펄펄 뛰면서 활약할 수 있는 나이에 윤여태 의원은 초기 코로나로 희생 되었다. 시의회 참석 후 감기 기운으로 며칠 지난 후 아무런 처방도 못할 지경에서 며칠 만에 간 것이다.
장례식에서 전염을 막기 위해 참석도 제재 했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백신이 있고 걸려도 쉽게 완치가 될 코로나 치료제도 있다. 평소 매우 활달한 성품과 적극성으로 계속 시, 주, 연방 의원까지 나아갈 촉망 있는 큰 인재가 너무도 아쉽게 간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 하면 모두가 눈코 뜰새 없이 열심히 각종 학위를 따고 경제 기반도 쌓길 원한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은 어느 누구도 면할 길이 없다. 계속해 코로나와 오미코론으로 또 새로운 세균이 나오므로 아직도 계속 확산 중이다. 사망자나 확진자가 세계 제1, 2차 세계전으로 사망한 숫자보다 많으니 앞일을 아무도 모르는 질병이다.
윤 전 의원은 60대 초반 나이로 참으로 아쉽게 생을 마쳤다.
비록 짧은 인생이지만 주변 여러 저소득층과 각종 도움이 필요한 다민족에게 깊은 사랑으로 헌신했다. 윤여태 전 시의원의 추모식에 여러 지인들이 모여 생전의 그의 열정과 이웃 사랑을 되새기며 유족을 위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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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복/사랑의 터키 한미재단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