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이웃들과의 만남
2022-04-06 (수)
문일룡 변호사
내가 아프간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몇 주 전에 내가 보조교사로 자원봉사하고 있는 성인 ESL 프로그램의 책임자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 지역의 한 미국인 교회에서 아프간 사람들을 위한 ESL 프로그램에서 가르칠 사람들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이메일을 받고 나는 망설였다. 이미 여러 가지 일로 바빠서 또 다른 봉사에 나선다는 게 무리일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조금만 더 시간을 내면 도와줄 수도 있는데 모른 척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이메일로 연락을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 말고도 제대로 자격을 갖춘 다른 자원봉사자들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8일 만에 연락이 왔다. 다른 일로 정신없이 바빠서 미처 답장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고 모든 자원봉사자들의 배경과 경력을 조사해야하는 담당자는 나의 경력에 대해 좀 더 알기를 원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20년 이상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교육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얘기를 해주기에 이르렀다. 담당자는 그 얘기를 듣자 너무 반가워했다. 그리고 바로 자신이 도와주고 있는 다섯 아프간 가정에 모두 20명의 어린 자녀들이 있는데 미국에 여러 달 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학교에 등록하지 못했다고 했다.
자세히 물어보니 한 가정은 미혼여성 혼자이고, 또 다른 한 가정은 8개월의 어린아이를 하나 두고 있으니 나머지 세 가정에 19명의 자녀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도착 후 학교 등록에 도움을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또한 학교 등록에 필요한 서류들도 아프간에서 제대로 챙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취학연령의 미국 거주자는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같이 사는 한 누구든지 체류신분에 상관없이 공립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서류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담은 못하지만 그래도 전직 교육위원으로서 바로 연결되는 사람들도 있으니 한 번 학교 등록에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얘기했다. 다행히도 교육청 담당자들은 내가 보내준 정보를 받아 학생들의 등록절차를 바로 밟아주었다. 그 아프간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기에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다리어’ 통역사도 구해주었고, 학생들의 실력평가를 위해 중앙등록처로 찾아와야할 때 필요한 교통편도 마련해주었다. 장시간의 평가 시간 중 식사를 해야 할 때 학생들이 먹을 음식도 교육청이 준비해주었다. 회교도들이어서 먹는 음식에 제한이 있는 것도 미리 챙겨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해서 이제는 취학이 가능한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 등록해 등교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가운데에는 8개월짜리 아이를 둔 부모도 한 명 포함되어있다. 그 부모는 이제 20세인데 ESL 교육이 필요한 22세 미만의 고교 미졸업자에게 교육을 제공하도록 하는 미국 연방법에 의해 고등학교에 등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그 이메일에 처음엔 망설였지만 그래도 답장을 보낸 게 너무 다행스럽게 여겨진 지난 몇 주 간이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배려의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 주위에 도울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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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