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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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들 리프 피그

2022-04-02 (토) 오소영 / 노스캐롤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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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커다랗고, 진한 녹색을 띠며 잎 속에 생명의 줄이 물결치듯 흐르는 이 화초. 생김새가 바이올린 모양과 같아서 피들 리프 피그(Fiddle Leaf Fig)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떡갈고무나무’라고 알려져있지만, 그보다는 잎이 훨씬 큰 종으로 해외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이 화초가 우리 집에 들어온 건 지난해 겨울이었다. 화초는 키가 내 허리쯤 와있을 만큼 크고 잎이 커서 거실에 놓으니 식물원 같고 이국적인 느낌을 발산했다. 사실 난 화초를 그리 잘 가꾸질 못한다. 우리 집에 갖다놓으면 알아서 살기를 바랄 뿐, 물도 제대로 안 주고 거의 죽이기만 했다. 딸아이는 이건 죽이지 말고 잘 키워보라며 창가 옆에 화분을 놔두었다.

처음에는 흙이 마르면 물도 주고, 잎사귀가 잘 자라는지 자주 살펴보았다. 근데 어느 날 툭~ 하는 소리가 들려 둘러보니 화초의 큰 잎 하나가 갈색으로 변해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삼일에 걸쳐 또 한 잎씩 떨어지는 게 아닌가. 겨우내 창가가 추웠는지 잎사귀가 추위를 못 견디고 떨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거실 가운데로 옮겨놓았다. 그 뒤엔 더 이상 잎이 떨어지는 안타까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곤 날씨가 더워지는 3월이 되면서 어느 날 보니 그 바이올린 같은 잎이 모두 힘을 잃고, 축 처져있었다. 왜 그러지. 그날 오후 학교 갔다온 딸아이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한 냄비 물을 가져다가 화초에 부어주질 않는가. 내가 준다고 주었는데 너무 찔끔찔끔 주었나보다. 그리고 난 다음날도 잎이 힘을 내지 못했다. 딸과 나는 햇빛 쪽으로 자리를 옮겨보자고 했다. 그리곤 반나절 지나 거실에 나가보니 그 커다란 잎이 위에서부터 서서히 일어서고 있었다. 세상에! 햇빛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타월로 한 잎 한 잎 쌓여있는 먼지도 닦아주었다. 매일같이 내 얼굴만 씻을 줄 알았지 나쁜 공기를 흡입하고, 좋은 공기를 우리에게 선사해주는 이 식물을 그저 방치만 한 내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다.

식물이 자라는 데도 적당한 햇빛, 온도 그리고 물이 필요하듯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균형잡힌 공급이 필요하다. 영양이 고루 들어있는 식사와 충분한 잠으로 육체를 건강하게 관리해야하고, 외로움과 고독감을 달래기 위해 친구도 필요하고, 독서도 필요하다. 나에게 필요한 햇빛은 무엇일까?

얼마 전, ‘다큐 3일’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세계최대 땅 밑 세상-인천 부평지하상가 72시간’이란 프로를 보았다. 지하상가에서 하루 종일 일을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온 부부에게 기자가 물었다. “오늘 몇 시간 지하상가에서 일하셨어요?” “아침 10시에 문 열고, 지금 밤 10시니 12시간 일하고 왔네요. 지상으로 올라오니 숨이 잘 쉬어지네요. 좋네요” 이들에게 햇빛은 무엇일까? 우리들이 생각하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비타민 D를 만들어주는 그 햇빛? 아님, 사방이 탁 트인 지상의 공기? 그들에게 햇빛이란 찾아오는 손님들의 웃음소리와 발걸음 그리고 애쓴 만큼 찾아오는 평범한 일상의 루틴이 아닐까.

<오소영 / 노스캐롤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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