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방팔방 펼쳐지는 일망무제의 전망 장관

2022-04-01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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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가주 산행 가이드] Vetter Mountain ( 5,911’)

사방팔방 펼쳐지는 일망무제의 전망 장관
남가주 일원에는 이런 저런 높고 낮은 산들이 많기도 많지만, 정상에 올라섰을 때 가장 많은 산봉우리를 전망할 수 있는 산을 하나 꼽으라면, 아마도 Angeles National Forest 의 거의 중심부에 있는 Vetter Mountain이라고 답해야 할 듯하다.

이 산의 정상에서는 그야말로 사방팔방 360도에 걸쳐 일망무제의 전망이 펼쳐지는데,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산이 마흔 개는 족히 되어, 과연 옛날부터 화재감시대를 둘만한 곳이라는 것을 쉽게 수긍할 수 있다.

Vetter Mountain은, 동서로 68마일, 남북으로 23마일에 걸쳐 LA의 북동부에 걸쳐있는 Angeles 국유림의 거의 중심부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Angeles Crest Highway(SR-2)가 타원형의 이 국유림을, 마치 태극마크에서 원의 중심을 음과 양이 ‘S’ 자 모양으로 관통하듯 하고 있는 가운데, 이 도로의 중심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지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동고서저의 규국을 이루고 있는 이 샌게브리얼 산맥의 특성을 감안하면, Vetter Mountain을 기준으로 하여, 이 산 보다 동쪽은 높은 산들이고, 이 산 보다 서쪽은 낮은 산들이라고도 가늠해 볼 수도 있겠다.


Vetter 라는 이름은, 산림보호에 대한 공이 큰 사람을 대상으로 산림청에서 수여하는 Bissel Medal 을 1930년에 받은 바 있는 레인저, Victor P Vetter 를 기려, 그 당시 산림청의 Surveyor 였던 Donald Mclain에 의해서 1933년에 부여되어졌다고 한다.

시야가 넓고 전망이 좋은 이곳에 처음 화재감시대가 설치된 것은 1937년이었는데, 그 후 44년 동안 운영되어 오던 이 시설이 1981년에 폐쇄되어졌다가, 17년이 지난 1998년에 다시 개축되어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어 왔으나, LA 역사상 최대의 산불이었다는 2009년의 Station Fire 로 그만 잿더미로 바뀌고 말았다.

필자가 2013년 6월에 이곳을 찾아 갔을 때는 비번인 레인저와 자원봉사자들이 잿더미가 된 정상에서 화재감시대의 복원을 위한 홍보와 모금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근년에 갔을 때에는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재건을 하기위한 1단계 공사일 정사각형의 콘크리트 축대가 타설되어 있었다. 난 그때 20달러를 도네이션했으니, 이 기단부의 조성에 ‘벽돌 1개’를 기여한 셈인지도 모르겠다.
사방팔방 펼쳐지는 일망무제의 전망 장관

특히 이 화재감시대는 목재를 사용한 초기양식으로 지어졌었다는데, 이곳이 역사유물 보전지로 지정되었기에, 지난날의 향수도 느낄 수 있도록, 돈이 더 들더라도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될 것이라고 한다.

아마 머잖아 예전의 모습 그대로의 감시대가 다시 의연하게 사위를 굽어보는 아담한 자태로 조성되어질 것인데, 이는 마치 불타고 난 잿더미에서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는 전설의 불사조 ‘Phoenix’ 를 연상시키는 일이라고 하겠다.

이곳의 화재감시대를 거론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Ramona Merwin 이라는 여성이다.

충직한 레인저였던 남편을 사별하고 딸 아들 두 자녀와 어렵게 살아야 했던 이 여인이, 1953년에 산림청 간부의 파격적인 제안에 따라 이 화재감시대에, 두 자녀와 함께 입주하여 1981년에 이곳이 폐쇄될 때까지 28년간 이곳에서 숙식을 하며 화재감시원으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화재감시원의 임무에는 비행체를 관찰하고 기록 보고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니, Angeles 국유림의 가장 핵심이랄 수 있을 이 망루에서, 월 2일의 휴가를 빼고는, 매일 매일 24시간에 걸쳐 이곳의 하늘과 산을 지키며 헌신한 ‘LA 최북방의 수호천사’ 라고 부를 만하다.


이 여성 Ramona 의 이야기를 대하면서, 1953년 그 당시에는 이곳 미국에서도 여성이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 순직한 동료직원의 가족을 배려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할 수 있었던 동료애와 산림행정의 유연성 등을 느낄 수 있어 애잔하면서도 흐뭇한 마음이 된다.

왕복 4마일에 순등반고도는 약 500‘가 되고, 총 2시간 내외가 소요되는 쉬운 코스이므로, 어린이를 동반하는 가족단위의 나들이로도 괜찮을 듯 한데, 이 산 자체는 크고 높지만 등산로 자체는 아기자기한 굴곡이 적고 짧으며, 나무들이 불에 탄 모습들이어서 대체로 밋밋하고 삭막하나, 이곳에서 바라뵈는 전망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큰 장점이 있다.

가는 길

I-210에서 La Canada 의 Angeles Crest Highway(SR-2)로 나와서 북쪽으로 23마일을 가면 길 왼쪽으로 Charlton Flat Picnic Area 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Red Box 에서 9마일을 더 온 곳이고 Newcomb’s Ranch Restaurant 에는 1마일쯤 못 미친 지점이다. 여기서 좌측으로 나있는 도로 3N16을 따라 200m를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화장실이 갖춰진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주차한다.

등산코스

주차장에서 보면 길(3N16)이 서쪽과 북쪽으로 갈라진다. 어느 쪽도 Vetter Mountain 정상에 이를 수 있으나, 우리는 차량통제 게이트가 있는 서쪽 길을 따라 가기로 한다.

차량통제게이트의 오른쪽에 Poodle-dog Bush라는 식물의 사진이 주의사항과 함께 부착되어 있다. 화재가 났던 자리에서 더욱 번성하다는 식물로 피부에 닿으면 Poison Oak 처럼 발진이나 가려움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한다.

오뉴월에는 보랏빛 꽃이 탐스럽게 피고 향기도 좋아서, 만지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식물인데, 도로변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어, 10여년 전에 대형화재가 있었던 현장임을 증거하고 있다.
사방팔방 펼쳐지는 일망무제의 전망 장관

전체적으로 도로상태가 좋고 전망도 양호하다. 이 도로를 기준으로 왼쪽의 Vetter Mountain 남측면은 건조하여 키가 작은 식물들 즉 Chamise, Yucca, Ceanothus, Scrub Oak 등의 Chaparral 지대이고, 오른쪽의 북측면은 덜 건조하여 키가 큰 식물들, 즉 Canyon Oak, Cedar, Fir, Pine 등의 수목지대를 이루고 있어, 서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특성이 있기도 하다.

이 산의 이름이 과거에는 Pine Mountain 이라고 불리웠음은 바로 이 북측면의 싱그러운 수목들의 특성에 의하여서였을 텐데, 지금은 2009년의 산불로 온통 시커먼 잿더미가 되어있어 그저 참혹하고 살벌한 모습만을 노정하고 있다.

서쪽으로 나아가는 포장도로를 0.3마일쯤 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은 0.2마일거리의 Charlton Flats Picnic Site 에 이르는 갈림길이고, 직진하는 길은 2.5마일정도의 거리가 되는 길쭉한 4각형 모양으로 이 산의 남측면을 돌게 되는 Forest Service Road(3N16)이다.

우리는 왼쪽의 Vetter Mountain Road 를 따른다. 조금 더 나아가면 대략 200~300m 간격으로 3차례에 걸쳐 화장실과 주차장이 마련된 휴식시설이 있는 곳들을 지나게 된다. 남쪽과 서쪽의 전망이 좋다.

2번째 휴식시설을 지나면서는 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장 53마일에 이르는 Silver Moccasin Trail이 지나간다. Wilson Mountain 의 Chantry Flats에서 Mt. Baden Powell 을 지나 Vincent Gap 에 이르는 보이스카웃 대원들이 애용하는 지정 등산길이다.

1.2마일지점에 이르면 길이 다시 갈라지는데, 우린 계속 왼쪽 길을 따른다. 여기서부터는 비포장 구간이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화재의 현장이지만 특히 이 산의 북측면은 아직은 처참히 불에 탄 수목들의 형해들로 마냥 살풍경한 모습이다. 소방도로의 가장자리에 무성하게 자라있는 Poodle-dog Bush 의 바짝 마른 줄기들도 파괴된 현장의 을씨년스러움을 더해 주는데, 마치 불타 죽은 나무들의 시신을 밑거름으로 하여 그 위에 피어난 독버섯은 아닌가 생각된다.

드디어 정상부에 이른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Ramona 가족이 살았던 흔적인 듯 아주 작은 Pavillion 과 화장실이 있고 제법 큰 물탱크도 있다. 피크닉 테이블도 놓여있다.

최정상에는 화재감시대를 원형대로 복구키 위한 콘크리트 기단부가, 사이사이에 철근이 박힌 채 타설되어 있다. 기단부에 올라서서 동서남북을 둘러본다. 일망무제! 어느 쪽도 시야가 탁 트여있다.

드넓은 샌게브리얼 산맥의 많은 부분이 맨 눈으로도 잘 조망되는, 화재감시대로서는 가히 절묘한 명당처라고 할 만하다. 산림청에서 마지막 유급 화재감시원으로 Ramona 를 특채하여 이곳에 28년을 근무케 했던 배경의 일단을 알듯하다.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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