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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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2022-03-30 (수)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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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만 되면 으레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 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이렇게 시작되는 ‘봄날은 간다’-- 백설희 씨가 불렀지만 최백호 씨와 장사익 씨가 불러 더 유명해진 이 노래는 멜로디도 좋거니와 가사가 일품이다. 그래서 언젠가 시인들이 좋아하는 한국가요 노랫말 1위로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 봄에는 봄이 오기도 전에 그 노래를 불렀다. 봄이 오지도 않았는데 봄이 가다니…. 동구라파에서는 한 달 째 참혹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북한은 4년 만에 또 다시 대륙 간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으며 한국에서는 한반도평화 프로세스를 폐기하고 강대 강의 대결을 예고하는 보수 강경 세력이 집권을 했다.

평화의 꿈이 멀어지는데서 오는 허탈함을 참느라 3월 내내 그 노래를 더 힘껏 불렀다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덧없이 가는 봄을 야속해하며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누군가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말을 전해준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느냐’


그 사이에 집을 이사했다. 남들은 나이가 들면 낙향(落鄕)을 한다는데 나는 거꾸로 상경(上京)을 했다. 생활의 편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어느 날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대신 하늘로 치솟는 말의 그림이 그려진 이삿짐 트럭에 짐을 싣고 LA 중심지로 옮겨왔다. 그동안 살던 곳이 바다와 공원에 인접한 자연 친화지역이었다면 이번에는 인근에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과 더 브로드 뮤지엄, 현대미술관 등이 즐비한 문화의 한 복판인 것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면 낮에는 멀리 LA 동쪽으로 하늘과 도시가 맞닿은 곳에 구름이 피어나고 밤이면 그 넓은 하늘에 별도 보이고 달도 보인다.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따라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가기도 하고 또 오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봄이 오기도 전에 스스로 봄을 차버리는 이들도 있고 봄이 언제나 머물러 있을 줄 아는 이들도 있다.

윤석열 당선자의 인수위원회가 그런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 0.73%의 승부였기에 한 없이 겸손해야하고 온갖 통합과 협치를 다 동원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그 막중한 정권 인수를 ‘잔금 다 치른 매수인이니 매도인이니’하는 천박한 비유를 들이대며 정복자인양 행동하는 모습이라니….

봄나물 비빔밥을 곁들여 뒤늦게나마 대통령과 당선인이 만난 것은 다행이지만 정권이 출범도 되기 전에 당선인에 대한 국정수행 기대치가 매우 낮은 것은 이례적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반대여론이 높고 무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한사코 고집하고 있다. 그러니 국민들 사이에서 무속이나 신기(神氣)에 씌우지 않고는 그럴 수가 없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세월도 권력도 사랑도 한 순간에 가버리는 것을…. 때마침 한국인으로는 처음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는 안데르센 상을 수상한 이수지 씨의 작품명도 ‘여름이 온다’이다. 봄날은 가고 여름이 오고 있다. 미국과 중, 러의 충돌, 남북 간의 대결, 국민 간의 갈등… 한반도에 어느 해보다 뜨거운 여름이 오고 있다.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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