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강쥐’ 혹은 ‘댕댕이’라 부르는 반려견
2022-03-29 (화)
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예전에는 강아지가 집 안에서 함께 먹고 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과 동물의 경계가 분명했다. 강아지란 그저 생활에 보탬이 되는 존재? 사람이 먹다가 남은 음식을 선처해주듯 던져주면 주린 배를 채우며 꼬리를 흔들어 화답하고 대낮에도 도둑이 들 만큼 생활이 궁핍해 그저 입막음용으로 집을 지켜주는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
포동하게 살이 찌면 동네를 돌아다니는 개장수에게 미련 없이 팔아 생활비로 썼다. 물론 몸보신을 위한 식용의 개념으로 소나 돼지처럼 육류를 제공하는 동물로 대하는 사람이 지금도 있지만, 무개념이 난무한 혼란스러운 그런 때였다.
그래서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같이 놀며 뒹굴었던 친구 같은 강아지가 없어져 버린다 한들 부모님이 개장수에게 개를 팔아버렸구나 싶어 대꾸도 못하고 한없이 눈물만 흘렸다는 사람도 있고 뒷산에서 털이 타는 비릿한 냄새가 나도 그저 한 마리 개가 배고픈 사람들에 의해 맞아 죽어 불태워지고 있구나 싶었다는 목격담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아이가 울면 무서운 개장수에게 팔아버린다는 말에 찔끔 눈물을 거두었던 기억이 나는 것도 모두 한 집에서 기거하면서도 사람과 동물 사이에 더 이상의 감정이 필요치 않았다는 암묵적인 약속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 시절이라고 사람의 감정이 지금 사람들과 달랐을 리는 만무하고, 경제적인 궁핍이 인간의 감정을 저울질할 수 없을 만큼 절박하면 감정 또한 무뎌질 수밖에 없다는데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기어가는 개미를 실수로 밟아도 미안한 마음에 움찔할진대 어찌 나와 함께한 강아지의 존재가 그리 가벼울 수 있었을까? 가난했던 시대상을 원망하며 그때 우리 부모님이 겪었던 격정의 시대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시대가 흐르면서 아파트라는 폐쇄적인 구조적 공간이 사람과 동물을 함께 기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했다. 자연스럽게 동물이 집안으로 들어오게 만든 일등공신이 되었다. 또 그러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사람과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자는 것은 물론이고 강아지나 고양이가 사람과 밀접하게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멋진 이름을 붙여주게 되었다. 애완견이라는 말은 거의 사라지고 '반려동물'이라는 멋진 동반자로서의 이름이 그들에게 부여되었다.
‘반려'라는 말은 흔히 동반이라는 말과 함께 쓰이고 명사로서 반려자라고 하면 ‘짝이 되는 사람'이라고 하며 흔히 결혼했을 때 결혼 상대를 반려자라고 부른다. 그렇게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을 감히(?) 동물에게 부여한다는 건 그만큼 동물을 사람과 아니, 사람보다 더 훌륭한 동반자의 개념으로 받아들인다는 말로 해석하면 맞을 듯하다.
영어에도 같은 말을 쓴다. ‘Companion’이라 해서 한국처럼 집에서 키우는 동물을 동반자 개념으로 본다. 하지만 Companion은 종종 Accessory와 비교된다. 즉 반려자로 평생을 함께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사람이 드는 백이나 뽐내며 착용하는 액세서리처럼 사람이 외로워서 그냥 남 보기에 이쁘게 꾸며 데리고 있는지를 구분하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백화점이나 마트에 진열된 예쁜 악세서리를 구매하듯 반려견을 돈을 주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그리 옳지 않은 생각이다. 흔히 동물보호소에 있는 동물들은 성격도 이상하고 지저분하고 무슨 병이라도 있지 않나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발견 즉시 필수로 온갖 검사를 다 하고 철저히 예방접종을 마쳐야 한다. 기본적인 행동 교육도 전문적으로 시킨다. 그래야만 입양 절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인한테 버려진 많은 동물이 따뜻한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
더구나 최근에 코로나로 경제적인 이유와 고립되어 메말라 버린 정서적인 탓으로 애니멀 쉘터에는 버려진 동물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코로나 사망자가 많은 탓에 제일 먼저 길거리로 내몰려 희생양이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몇만 명의 고아가 생겨났는데 동물의 거처는 오죽할까 싶다. 이럴 때 일수록 근처에 있는 쉘터에 가서 봉사도 하고 나와 마음이 통하는 외로움을 나눌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면 어떨까 싶다.
요즘 한국에서는 강아지를 줄여 강쥐라 하고, 멍멍이를 줄여 댕댕이라고 부르는 이가 많다. 애완견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반려견으로 레벨이 상승한 데 이어 이젠 이런 애칭이 대세라 한다. 좋은 일이다. 오늘도 주인만 쳐다보고 있는 우리 강쥐와 봄바람이나 실컷 맞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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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 엘리콧시티,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