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어느 날, 위암에 걸려 두차례의 수술 후 집에서 요양 중인 나의 절친 전 영철을 차에 태우고 내가 조성 중인 교회의 꽃밭으로 향했다. 차 중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영철이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국민가수 안나 게르만의 아름답고 애절한 가을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영철은 암에 걸리기 2년 전에 위암으로 자신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아내가 보고 싶을 때는 이 노래를 듣는다고 했다. 이후 나는 들을수록 맑고 부드럽고 슬프기까지 하는 안나의 노래를 먼저 보낸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듣게 되었다.
안나는 2살 때 병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두 번째의 아버지마저 전사했다. 지질학도인 안나는 우연한 기회에 친구에 이끌려 음악경연 무대에 섰다. 이를 계기로 국제가요제에서 최고상을 받는다. 안나는 36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10년 동안 병고 속에 살다가 46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안나는 맑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동구라파의 발라드(ballad)를 더욱 아름다운 장르의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며칠 전 JTBC의 ‘뜨거운 싱어즈’에서 배우 김영옥 할머니가 부른 노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감상했다. 한평생을 살아온 연륜과 진심을 담아 부른 노래가 공연에 참여한 모든 출연자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음악성과 따뜻한 이야기가 함께할 때 얼마나 큰 감동의 시너지의 폭발을 실감케 해주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노래가 시작되어 첫 소절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라는 대목에서 나의 어머니의 모습이 사진틀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웃고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폭포처럼 가슴 속으로 밀려왔다. 아버지의 병고로 다섯 자녀의 생계를 돌보기 위해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셨다.
어느 때는 너무 피로한 나머지 손가락을 바늘에 찔려서 흐르는 피를 닦으시면서 눈물 지으시던 어머니. 어느 때는 어머니 옆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가 조선의 명필 한석봉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호롱불을 꺼놓고 한석봉과 어머니가 붓글씨 쓰기와 가래떡 썰기 시합을 했다. 결과는 자로 잰듯 가래를 자른 어머니의 승리였다.
어머니는 늘 인자하셨고 단 한 번도 나에게 화를 내신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눈빛은 첩첩산중에 내린 어둠을 걷어내는 맑은 달빛이었고, 나의 뒤를 따라다니며 지극한 사랑으로 음지의 계곡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신 그런 분이셨다. 어머님이 그립고 보고 싶다.
어머니의 가이없는 사랑은 영원히 내 마음 속에 간직할 소중한 보배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김영옥 할머니의 노랫말을 음미해본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 나는 그 곳에 없어요 /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 나는 천 개의 바람 /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에는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지난 해 1월 초순 코로나의 극성으로 ‘사랑의 등불’ 선교회 소속으로 노숙자 봉사활동을 지속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날씨는 추운데 3개 도시에 있는 아무도 손길을 주지 않는 노숙자들을 내 개인의 힘으로 1주일에 한두 번씩 그들을 도우기에는 양적 질적으로 많이 부족했다. 어떻게 이 어려움을 타개할 지를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타개책을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내가 근무하는 코스코의 데이빗 지사장을 만나서 노숙자들을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데이빗씨는 내가 준비한 서류와 노숙자들의 처참한 현실이 담긴 200여 장의 사진을 검토한 후에 나의 손을 꼭 잡으며 곧바로 코스코가 돕고 있는 세계선교회의 회장인 코라 목사님을 전화를 걸어 소개해 주었다.
코라 목사님은 여성의 몸으로 28년 간을 미국 동중부에 소재한 대기업으로부터 식품과 생필품을 기부받아 워싱턴 지역과 아프리카의 빈민들을 구호해 왔다.
코라 목사님은 시작 첫 주부터 나의 차에 노숙자와 장애인들을 위한 선물을 가득 채워 주셨다.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데이빗 지사장이 코스코의 100개 이상의 지사를 관리하는 동중구 지구 임원으로 승진되었다.
그는 승진의 기쁨도 잠시, 실적이 저조한 다른 사업장을 재건하기 위해 떠났다. 그가 떠나면서 영국의 국민가수인 잉글버트 험프딩크의 노래 ‘How I love you’를 나에게 보내왔다. 4월의 휴가 때에는 코라 목사님과 함께 그의 사업장으로 그를 만나러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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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김 / 그린벨트,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