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대 중반 조선인들이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한민족의 이산(離散)이 시작되었다.
1882년 조선과 미국이 수교된 후, 1903년부터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7,0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주하기 시작하여 그 행렬이 미국 본토와 멕시코 유카탄 반도를 거쳐 쿠바까지 이어졌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에는 200만 명이상의 조선인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본 땅을 밟았고 또는 강제적으로 일본과 동남아로 옮겨지기도 했다. 1937년에는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 약 18만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1950년대 6.25동란을 겪으면서 생긴 한국 전쟁고아들은 미국과 유럽으로 입양되었으며, 한국 주둔 미군들의 신부가 되어 떠난 한국 여성들 또한 큰 집단을 이루었다. 1962년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농업이민, 1963년 독일로 떠난 간호사와 광부들, 1965년 미국 이민법이 개정되어 재개된 미국 이민 허용으로 대량 미국 이민 등이 이루어졌다.
1990년 이후에는 자유로워진 해외여행과 취업과 비즈니스의 기회를 찾아 중국과 동남아를 비롯해 전 세계로 신이민의 물결을 이루었다. 지난 15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민족은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세계 각 곳으로 퍼졌다. 그리고 현지 적응과정에서 재외 한인들은 언어와 생활습관, 풍습 및 의식구조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대부분의 해외 한인들은 최소한 한국어로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가족 간의 강한 유대감이나 가족 중시의 전통, 조상숭배, 음식문화 등 아직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렇듯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100년 이상 떨어져 살아온 한민족들은 1990년대 이후 거의 30여 년을 지나오는 동안, 새로운 제2차 이주와 귀향을 통해 서로 간에 이질감이 많이 해소되어가고 있고, 서로 유대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세계 각지의 한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코리아타운이 확장되고 활성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점’과 같았던 코리아타운들이 ‘선’으로 연결되어 상호간에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해가 지지 않는 민족’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특히 국가와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초국가적(transnational) 현상이 한국과 세계 각국의 한민족들 간에 유대관계를 넓히고 네트워크를 긴밀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의 한민족들이 정체성과 전통을 이어나가고 네트워크 형성을 가능케 하는 데에는 세계에 산재한 코리아타운들이 매년 개최하고 있는 한인 축제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축제를 통해서 한인 1세들은 서로 간에 연대감을 형성하고, 2세들은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다.
해외에서 개최되는 한인축제들은 이제 단순한 놀이마당이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동질성을 발견하는 과정인 동시에 연대감을 갖게 하고 한인들을 단결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이 같은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축제 무대에서 공연되는 K-POP은 한인 2세와 3세들에게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하고 자긍심을 갖게 하며, 한국문화를 스스로 배우고 익히려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이제 코로나 팬데믹도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야외활동이 늘어나고 한인들의 축제도 다시 개최되기 시작할 것이다. 해외 곳곳에서 개최되는 코리아타운의 축제들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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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완 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