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승패를 가릴 수 없는 교착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군에 포위된 항구 마리우폴을 러시아에 넘기라는 최후통첩을 우크라이나가 거부하고 항전을 택하고 나서 과연 우크라전쟁이 어떤 귀결을 맞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간의 우크라이나를 보면 과거 한일합방을 겪은 조선말기 한반도 모습이 연상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병합이든, 중립국이든, 아니면 독립 그 자체든 어차피 대국 러시아의 속국이 되지 않을까.
사실 우크라이나는 오랜 기간 러시아제국의 일부였다.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으로 존재한 건 볼쉐비키 혁명 당시 독립선언을 통해 잠시 누렸던 해방공간 속에서 뿐이다. 소련 붕괴후 독립은 얻었지만 그동안 국방력을 키울 기회를 잃고 부패와 내부갈등으로 자멸의 길을 걸은 것이다.
독립공화국의 운명은 스스로의 정치적 결정에 따른 결과물을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다. 때문에 정식 동맹이 아닌 나토와 말로만 돕겠다고 하는 서방의 나라들이 강력한 러시아와 대적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파병을 하고 나설 일이 있을까.
더구나 동부의 돈바스 지역은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러시아로의 편입 찬성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러시아가 침공하자마자 돈바스지역 사람들이 러시아 국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폭죽을 터뜨리는 축제분위기였다고 한다. 2014년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도 유사한 상황이었다.
1910년 한국의 경술국치는 그해 8월 한일합병조약에 의해 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넘겨주게 된, 그야말로 참담한 상황이다. 일제가 의병운동에 참가한 의병들과 가족은 물론, 그들에게 식량을 제공한 조선인들까지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학살하고 탄압했기 때문이다.
일부 조선 지식인들은 러일전쟁을 찬양하면서 "한일합방은 하나님의 계시이자 섭리"라고 강변했다고 한다. 평양과 한양의 일부 교회들은 일본 천황을 앞세워 전도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조정이 일제의 침략 징후에도 나라를 내팽개친 결과가 바로 한일합방인 것이다. 110년이 조금 넘은 조선의 한일합방은 약소국 우크라이나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
조선총독부의 통치는 일제 헌병의 폭력을 앞세워 1919년 3.1운동까지 9년간 지속되었다. 지금 우크라이나도 마치 대한민국이 일본에 흡수 합병되어버린 것처럼 소비에트로 흡수되었고, 지금 다시 역사가 재현되려고 한다. 조정의 무능으로 나라를 송두리째 일본에 넘긴 한일합방처럼 우크라이나도 무능한 위정자들로 인해 국민들이 현대판 한일합방 비극을 겪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코미디언 출신으로 드라마에서 청렴한 대통령을 연기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어 정치에 입문한 인물이다. 당연히 그에게는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마추어라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그러나 러시아 침공이 현실화되자 발등에 불이 붙은 것을 느낀 젤렌스키는 그때서야 러시아와의 외교관계 단절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때는 이미 위기관리에 실패한 뒤였다.
대한민국도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대통령이 자리에만 연연하며 나라의 행정을 맡는다면 나라꼴이 말이 아닐 것이다. 조선말기 무능한 리더십이 어떻게 나라를 망쳤는지 기억하면 윤석열 당선인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보이지 않을까.
"Eternal vigilance is the price of liberty(끊임없는 경계야말로 자유를 누리는데 드는 비용이다)" 19세기 미국의 노예 해방론자 웬들 필립스의 어록이다. 이 문구는 워싱턴 국립문서보관소 동상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국민들도 국가의 돌아가는 상황에 늘 관심을 가져야 책임있는 시민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보여주는 냉엄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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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