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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여성에게 안전한 곳은 어디인가요?

2022-03-19 (토) 이은정 휴스턴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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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와 그 외각의 마사지 샵들에서 일어난 총격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정확히 1년이 지났다. 무지하고 편협한 사고를 가진 한 백인 남성이 6명의 아시안 여성을 비롯해 총 8명을 살해했고, 그 중4명이 한국 여성인 박순정, 유영애, 김현정, 김순자 님이 목숨을 잃었다. 그 이후, 피해자 가족들을 위한 성금모금 운동을 비롯해 수 많은 아시안 계의 운동가들이 거리를 나서 아시안들에 대한 혐오를 멈추라고 시위를 해 오고 있고, 미디어에서도 드디어 반아시안 증오 범죄를 더 조명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안을 향한 혐오범죄들은 길거리에서, 버스나 지하철 역에서, 자신의 집 앞과 심지어 집안에서, 아침, 한낮, 저녁, 시간과 때를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비영리 단체인 ‘아시아계 미국인 및 태평양섬 주민 혐오를 멈추세요’ (Stop AAPI Hate) 에서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팬데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 3월 19일부터 2021년 12월 31일까지, 총 1만905건의 혐오 관련 사건이 보고 되었고, 작년인 2021년에 보고 된 범죄가 57.5%로 2020년보다 약 70%증가했다. 아시아 태평양 미국 여성 포럼 (NAPAWF)이 올 해 1월과 2월에 집계한 통계에서도 아시아계 미국인 및 태평양섬 주민 여성의 74%가 인종 및 다른 요소에 근거한 차별과 공격을 경험했다고 한다.

외국인 학생으로 처음 미국에 와 이제는 이곳이 또다른 의미의 고향이 되어 버린 지금, 아시안들에게 특히 아시안 여성들에게 안전한 곳은 어디인가를 생각한다. 지난 1년간 미국에서 느꼈던 감정과 경험들은 새롭지만 새롭지 만은 않은 것들 이었다. 처음 미국에 와서 길거리에서 들었던 성희롱에 가까운 외침이나 동료 학생이나 교수님들에게 들었던 아시안을 향한 편협하고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표현들에 대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었다. 내가 외국인이라, 백인이 많이 사는 작은 도시에 있어 겪었으리라 하고 참고 넘겼던 일들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처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법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면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 줄만 알았다. 남들이 인정할 만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친구와 가족들이 더 많아지고, 이곳에서의 내 뿌리가 더 깊어지면 흔히 겪던 소외감은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이처럼 순진하게 생각했던 안전한 삶의 구성 요건들 내가 시민권을 획득하고, 소위 말하는 모델 마이너리티, 혹은 모범적 소수자가 된다고 해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내 모습과 행동은 백인 사회에서 이성애와 가부장제의 기준에서 만들어진 ‘(동)아시안’과 ‘여성’이라는 관념을 통해 이해되고 읽어진다. 미국 내에서 다양성으로 알려진 도시에서 교수로 재직 중 임에도 가끔은 한국어보다 더 편할 때가 있는 내 영어에 대한 코멘트를 너그러운 칭찬인 마냥 스스럼없이 하는 이를 만난다. 내가 잡은 기회를 내가 가진 능력의 반증이 아닌, 그저 다양성 정책의 수혜 정도로 깔보는 이도, 내가 베푸는 친절이나 배려심에 대해 내가 아시안 여성이기에 당연하게 갖추어야 한다고 기대하는 학생과 동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공공장소에서 인종이나 성차별적 발언 및 다른 무례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이들을 지나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멀리 거리를 두고 혹시 총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살피게 된다.

물론, 내가 경험했던 일들이 실제로 물리적 폭력을 경험한 이들의 것들과 동등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특정한 종류의 혐오들만 (예를 들어, 물리적인 위협과 폭력이 수반되는 경우) 폭력으로 인정할 수 있고 비난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아시안들을 향한 폭력과 증오 범죄를 막는데 일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폭력과 증오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때에 따라 몸집을 키우기도 목소리를 낮추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든 나타날 수 있는 혐오를 알아차리고 싸워야 한다.

이 나라에서 아시안 혹은 아시안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느 쪽에서도 확실히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주변인으로서 끊임없이 ‘왜 우리가 이곳에 속하는 가’ 혹은 ‘왜 우리가 동등한 인간이며 인격체인가’라고 묻는 이들과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이념에 대해 투쟁하는 일이다. 그래서 ‘아시안/여성에게 안전한 곳’이란 원래부터 주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항상 싸우며 만들어 나가고 지켜내야 하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이은정 휴스턴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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