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진정 도와주는 나라는 없다
2022-03-17 (목)
이춘근 국제정치 아카데미 대표
예상했던 대로 지난달 24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전 세계는 우크라이나를 선(善), 러시아를 악(惡)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갑자기 영웅으로 떠올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악의 화신이 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코미디언 출신이었다는 사실에 빗대어 찰리 채플린이 처칠로 변신했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애국심이 세계적으로 칭송되는 한편 러시아의 악마성이 심각하게 규탄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은 우크라이나를 위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부질없고 허망한 일이다. 이 세상 어떤 전쟁도 작금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보는 감성적인 관점으로는 그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선한 나라, 즉 착한 나라가 아니라 약(弱)한 나라다. 러시아는 악한 나라 혹은 나쁜 나라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강한 나라다. 인류 전쟁사 1만 년을 되돌아볼 때 언제라도 강자가 침략국이었고 약자는 침략을 당하는 나라였다. 즉 국제정치는 정글의 논리에 의해 지배당해왔으며 그 논리는 민족국가 체제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종막을 고하게 된 문재인 정부는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러시아 침공에 대항하는 젤렌스키를 어떻게 평가할까. 문재인식 평화 지상주의가 혹시 젤렌스키는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여 나쁜 평화를 택했어야 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여 땅 덩어리 일부를 떼어주고 나쁜 평화라도 얻는 것이 전쟁보다는 낫다고 보는 것일까.
전쟁을 수행하는 양쪽 모두는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모두 자신이 정의이자 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전쟁은 정의와 또 다른 정의 사이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역사는 승자를 정의라고 재단하기 마련이다. 거의 똑같은 모습의 무지막지한 침략 전쟁을 벌인 히틀러와 나폴레옹이 다르게 평가되는 것을 보라. 히틀러는 악마인데 나폴레옹은 오히려 영웅 대접을 받기도 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것일까.
우크라이나 여성이 ‘전쟁은 이제 무섭지 않아요. 나라를 지킬 거예요’라고 말하며 군에 입대하는 모습, 음악가들이 악기 대신 총을 쥐는 모습, 노인들도 군에 가는 모습은 애국적이고 감동적인 모습일 수는 있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슬픈 모습이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여인과 노인, 즉 의병이 전쟁터로 나가지 않는다. 관군이 제대로 역할을 못해 의병이 나라를 지킨 선례가 너무나도 많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쟁에 관한 그릇된 관점은 지금 우크라이나를 영웅적인 나라로 오해하게 만든다.
냉혹한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우리가 가까이해야 할 나라는 러시아지 우크라이나가 아니다. 우리의 이익이 우크라이나보다는 러시아에 더욱 크게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냉혹한 논리는 지금 온 세계가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를 선이라 하고 러시아를 악이라 말하면서도 아무도 우크라이나를 진정으로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우크라이나의 한 병사가 미국의 폭스TV 기자에게 서툰 영어로 울부짖었다. “미국 당신네들은 겁쟁이야. 오바마 때부터 거짓말을 해왔어. 너희들은 거짓말쟁이야. 왜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하지 않는 거야. 리비아·이라크에서는 설정했잖아. 러시아가 무서운 것이지. 너희들(미국)은 미안하지만 개똥(bull shit)이야. 너희들은 초강대국도 아니야.” 영국군 사령관은 젤렌스키의 우크라이나 하늘에 대한 비행 금지 구역 설정 요구에 대해 “불법적이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의 요구는 절박하지만 나토는 이 전쟁의 당사자가 아니다” “우리는 전쟁이 확전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정 우크라이나를 도와주는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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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국제정치 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