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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

2022-03-16 (수) 이경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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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역시나였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3월10일 한국 주식시장은 요동쳤다. 이날 윤 당선인 관련 테마주는 일제히 급등했고 윤 당선인과 단일화로 대선 승리를 이끈 주역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관련주도 덩달아 올라갔다. 패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테마주가 하락한 것은 물론이다.

정치테마주는 학술적 용어가 아니다. 구체적 정의도 내려지지 않았지만 유력 정치인과 혈연·학연·지연으로 연관돼 있다고 알려지면 수혜를 볼 것이라는 기대감에 특정 주식의 가격이 폭등하는 일이 벌어진다. 대선이라는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사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렇게 돈과 관련된 이벤트로 다뤄지는 것이다.

한국 대선 뿐만일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정치적 사건으로만 볼 수 없다.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서방 세력 중 미국과 유럽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도 경제적 이유 탓이 크다. 유럽은 저렴하게 수입할 수 있는 러시아의 원유·천연가스가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미국이 큰 목소리를 내는 것도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증시에서 이번 전쟁으로 투기판이 벌어진 것도 물론이다.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의 포탄이 떨어지고 있지만 시장 투자자들은 시민들과 군인들의 목숨값을 금리와 환율, 수익률로 계산할 뿐이다. 러시아 증시와 국채에 저가매수세가 몰리고 글로벌 주요 방산업체 주가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투자 세계의 냉정함에 소름이 끼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를까. 우크라이나 전쟁의 잔인함에 분노하지만 우리를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차를 몰고 주유소에 갔을 때 올라가 있는 개스값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말했듯이 러시아를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서는 모든 세계 시민들이 올라간 개솔린 가격 같은 ‘약간의 고통’은 희생해야 하지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자.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세계 곳곳에서는 반전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서울 남산타워를 비롯해 세계 명소 곳곳에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 조명이 설치됐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다양한 소셜미디어에 ‘Peace for Ukraine’ 물결이 불어온다. 하지만 이게 무슨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평화의 물결은 힘이 약하다. 시리아 사태 때도 반전 운동이 ‘인터넷에서’ 나타났고 마우스 클릭으로 평화의 행진에 참석했다는 만족감만 시민들에게 심어준채 상황은 미궁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 군대에 돈을 목적으로 한 시리아 용병들이 대거 참석하는 것을 보면 ‘손가락 반전 운동’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돈이 드는 평화에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폭등한 유가 등 인플레이션을 생각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전쟁터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올라간 렌트부터 매일 끼니를 때우기 위해 마트에서 사야하는 식료품까지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의 삶은 지금도 이미 너무 팍팍해져 버렸다.

평화가 돈보다 중요했던 시대도 있었다. 이념 대립 탓도 있지만 6·25 전쟁에서 미국이 한국을 지원했던 것은 경제적 이유를 넘어선 무엇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나라도 우크라이나를 직접 돕지 않는다. 무고한 시민들이 러시아의 포탄에 희생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과거 냉전시대가 이어졌다면 서방이 이렇게 가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고 북한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선을 마친 한국에도 교훈이 필요하다. 글로벌 국제정세의 역학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정의를 실현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시민들에게 돈보다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음을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정감이라도 심어주기를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건투를 빈다.

<이경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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