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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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칸사 일기

2022-03-11 (금)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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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늙은 차를 타고 털털거리며 1,200마일을 달려 아칸사에 왔다. 펜실베니아의 광활한 설원을 지나고 웨스트버지니아주와 버지니아주, 테네시주의 산과 강을 건너 ‘미국의 호남평야’ 아칸사에 20시간 만에 당도했다.

테네시주 멤피스를 지나 미시시피 강을 건너면 아칸사주가 시작된다. 강을 건너자마자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이 안 보이는 대평원이 펼쳐진다. 온통 지평선으로 둘러싸여있어 마치 거대한 원반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이다.(한인들은 아칸사주를 ‘아칸소‘라 발음한다.)

영화 ‘미나리’의 무대이기도 한 아칸사는 미국 최대의 쌀 생산지, 미국에서 면적순위 29번째이나 남한과 비교하면 1.4배정도 더 넓다. 주도인 리틀록은 인구 50만의 중소도시로 비산비야,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구릉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언덕길이 많고 집들은 언덕 위나 나즈막한 야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특이한 것은 소나무가 많아 마치 한국에 온 것 같은 친근감이 든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출신지인 아칸사주는 한국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맥아더 장군의 고향이 리틀록이다. 또한 전미국 태권도 총본부가 아칸사주에 있다. 한국의 태권도 사범들이 뉴욕이나 워싱턴 등 대도시를 마다하고 아칸사주에 본부를 둔 것은 한국과 비슷한 지형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곳에서 태권도의 인기는 대단해서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말로 구령을 붙이며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다.

아칸사에는 약 5,600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다. 한국마켓이 한 곳 있으며 한국식당도 하나 있었으나 주인 은퇴로 최근 문을 닫았다. 기후는 한국의 제주도 날씨처럼 온화한 편이나 한겨울엔 영하로 내려가는 날도 가끔 있으며 여름은 덥고 습하다.

내가 있는 농장은 리틀록에서 15마일 정도 떨어진 곳으로 소와 말과 나귀, 닭, 오리 등 가축을 키우며 블루베리, 토마토, 사과, 상추, 무 등 각종 야채와 과일도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하고 있다. 새벽에는 닭 울음소리에 눈을 뜨고 밤에는 총총히 뜬 별을 보고 잠이 든다. 70평생 가파른 길을 허덕이며 달려온 나로서는 생전 처음 가져보는 여유로움이 아직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일은 일주일 전 새로 담근 막걸리를 걸러내서 마셔야겠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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