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자초한 서방세계의 신 봉쇄전략
2022-03-10 (목)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당초 길어도 나흘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결사 항전 의지와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에 불탄 국민의 저항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전투를 지속하고 있다. 초단기에 전쟁을 끝내고 국제사회에 침공의 명분을 선전해 우크라이나를 속국으로 만들려고 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구상이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개입이 어려우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과 같은 군사 안보 조직에 가입돼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보 관련 혈맹이 없고 설령 미국이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한 국제 연대를 조직하더라도 러시아의 에너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 동참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더구나 미국은 대만을 위협하는 중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어 두 개의 전쟁에 개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만약 미국이나 유럽이 개입하게 되면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을 중단시켜 동절기에 유럽의 난방을 어렵게 만들어 민심을 들끓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국제 유가 인상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고조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입지를 흔드는 카드를 준비했을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침공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밝혔던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는 느슨했다. 러시아의 예상이 맞는 듯했고 푸틴 대통령은 웃었을 것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러시아는 러시아인이 많이 거주하는 돈바스 지역의 자치권 인정만 노리는 것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전면적인 침공으로 러시아가 태도를 바꾸자 바이든 대통령은 고강도 경제 제재에 돌입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와 수출 통제 강화가 핵심 제재 수단이었다. SWIFT는 국가 간 무역 대금 송금이나 자금 결제 등의 업무를 위해 1973년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민간 금융회사가 만든 폐쇄형 지급 결제 시스템이다. 현재 전 세계 200여 개 국가의 1만1,000개 금융회사와 중앙은행이 가입해있다. 비자·마스터와 같은 해외에서 발행된 신용카드는 물론이고 국내 비씨카드 등으로 해외에서 결제할 수 있는 것도 SWIFT 결제망 때문이다.
SWIFT의 위력은 2012년 퇴출된 이란의 경우에서 알 수 있다. 조치 직후 이란 경제는 파탄 수준으로 악화됐다. 6,000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어 러시아가 미국 주도의 금융 제재를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고강도 경제 제재에 러시아 경제는 이미 디폴트(국가 부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고강도 수출통제와 SWIFT 배제가 동시에 적용되면서 러시아는 국내외적으로 핵폭탄급 ‘퍼펙트스톰’을 맞게 됐다. SWIFT 배제가 국제금융 차단이라면 수출 통제는 국제무역 실물 분야 고립화를 의미한다.
미국은 국가안보 관점에서 수출 통제 제도를 꾸준히 강화시켜왔다. 국가안보 위협 우려 혹은 대량살상무기(WMD)의 비확산조치 위반 외에 인권 탄압과 유엔 제재 결의사항 위반 등 다양한 이유로 독자 제재가 가능할 수 있게 규정을 강화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SWIFT 배제와 수출 통제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국제적 고립화로 강화되고 있다. 러시아를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퇴출시킬 듯하다. 이미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러시아를 WTO 선진국 협력 그룹에서 제외시키기로 했고 WTO에서 러시아를 논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옛 소련 시절의 봉쇄 전략과 달리 이번에는 러시아가 서방세계의 신 봉쇄전략을 자초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첫 국정연설에서 강조했듯이 국제사회는 독립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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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