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유례없이 치열한 접전 양상으로 치러진 한국의 20대 대선이 끝나고 승부가 가려졌다.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윤 당선자는 상대 후보보다 단 0.8%포인트의 지지를 더 받아 향후 5년의 국정을 위임받게 됐다.
피를 말리는 싸움 끝에 거둔 승리는 더할 수 없이 달콤하다. 그러나 패자의 고통은 그만큼 더 쓰릴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대선처럼 양 진영이 총결집해 벌인 극렬한 싸움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만큼 선거에 따른 후유증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패자의 승복은 기본이다. 그러나 승복한다고 해서 패배의 상처와 고통이 저절로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벌인 승부는 어김없이 깊은 상처를 남긴다. 비단 후보 개인뿐 아니라 그가 속한 정당 그리고 그를 지지했던 수많은 국민들 역시 깊은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이것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그런 감정은 분노로 이어지고 적대감을 상승시킨다. 그러면서 정치와 사회는 더욱 양극화되고 국가의 미래는 한층 더 어두워지게 된다.
그렇다면 승자의 책임과 역할은 아주 분명해진다. 모든 국민들, 특히 자신들이 지지했던 후보의 패배로 절망하고 있을 국민들을 보듬는 ‘통합의 정치’가 그것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후보 토론회에서 “통합의 정치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정치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는 데에도 다른 후보들과 견해를 같이했다.
윤석열 당선자는 캠페인 기간 내내 거칠고도 적대적인 언어들을 마구 쏟아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자신이 승자로 올라선 지금 윤석열 당선자의 입에서 나온 그동안의 발언들이 자신의 본심이 아닌,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전략적 언어였기를 바란다. 그리고 토론회에서 밝힌 입장이 허언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믿어본다.
대선을 거치면서 이념적 지향점이 다른 국민들 사이에 감정적 앙금이 쌓일 대로 쌓여 있다. 두 후보와 가족을 둘러싼 의혹들과 논란들 때문에 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평가 속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격렬한 양상으로 치러졌다.
여당과 야당의 두 후보는 캠페인 기간 내내 상대 후보의 범죄 혐의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끝난 후 지는 쪽은 감옥에 가게 되는 ‘철창 매치’라는 섬뜩한 전망까지 나돌았을 정도다. 이렇듯 대선을 거치면서 한층 뚜렷해진 적대적 대립 속에서 과연 승자의 원활한 국정 운영이 가능할지 우려가 될 정도이다.
그런 만큼 20대 대선의 승자 앞에는 유례없이 무겁고도 어려운 책임과 과제가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선을 거치면서 갈라질 대로 갈라진 여론과 민심을 어떻게 다독이고 갈등을 해소해 나갈 것인지가 새 대통령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하고 막중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리더의 진정한 역량은 이런 과제를 어떻게 감당해 나가느냐에 달려있다.
윤 당선자가 비록 승리는 거뒀지만 과반의 지지를 받는 데는 실패했다. 상대후보와의 지지율 차이도 0.8%포인트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제 선거제도의 폐습으로 지적되는 ‘승자독식’의 오만에 빠져 상대를 보듬어 주지 못한다면 ‘통합의 정치’는 물 건너가게 돼 있다.
자신에게 지워진 책임의 무거움을 깨닫고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 주는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힐링’의 정치이다. 패배한 후보와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을 계속 적대적으로 대하는 ‘킬링’의 정치로는 성공적인 5년은 절대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은 온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온 대립과 적대의 시간을 끝내야 할 때가 됐다. 윤석열 당선자는 무엇보다 이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앞으로 5년 동안 그에게 주어지게 될 시대적 과제다. 승자의 오만은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