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아, 뭐라는 거지?) …… 뭐라고? (하.. 전혀 안 들리네…) 뭐라고?”
옆집 사는 리사가 마침 자기네 집 앞마당에 나와있기에 가까이 다가가서 어디 출신인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지명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말해주는데 전혀 들리지 않았다. 리사는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니까 얼토당토않게 발음할 사람이 아니다. 미국의 50개 주 이름을 모두 알고 있고 상당히 많은 미국 지명을 알고 있는데도 리사가 말하는 지명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리사가 인내심을 가지고 여러 번 말해주는 것에다가 상당한 추리력을 더한 후에야 그녀의 고향이 푸에르토리코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고향이 푸에르토리코임을 알게 되면서 왜 그 지명이 금방 들리지 않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지명 ‘푸에르토리코’는 ‘푸에르/토리코’라고 끊어서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사의 고향은 Puer Torico(푸에르/토리코)가 아니라 Puerto Rico(푸에르토/리코)이다. 리사는 앞에 있는 ‘푸에르토’는 굉장히 빠르게 말하고 뒤에 있는 ‘리코’에서는 ‘리’에 강세를 넣었으니 ‘푸에르/토리코’로 알고 있는 그간의 지식과 일치되지 않았기에 금방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의 도시 중에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곳은 뉴욕이다. 영어를 배우기 전부터 이미 알게 되는 도시이다. 그런데 영어를 배우면서 이 도시의 이름이 Newyork(뉴욕)이 아니라 New York(뉴 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 독립 이전에 대서양을 건너온 사람들이 몸은 비록 낯선 곳에서 살지만 전에 살던 영국의 ‘요크’(York)를 생각하면서 ‘새로운 요크’(New York)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영어를 배우면서 ‘뉴욕’(Newyork)이 아니라 ‘뉴 욕’(New York)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작은 충격을 받았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뉴욕’이라고 적는다.
미국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엘살바도르라는 나라가 있다. 그 나라의 수도는 산살바도르이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 엘살바도르와 산살바도르. 그리고 읽을 때에는 모두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라고 끊어 읽는다. 다섯 글자로 된 단어는 2/3 또는 3/2로 끊어 읽는 것이 우리에게는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이름은 엘살/바도르가 아니라 엘/살바도르(El Salvador)이다. 수도도 산살/바도르가 아니라 산/살바도르(San Salvador)이다. 1/4로 끊어 읽는 것이 좀 어색하기는 해도 원문이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라고 적는다.
영문 지명이 두 개의 단어로 되어있더라도 우리 글로 적을 때에는 하나의 단어로 적는 것이 우리의 표기법이다. 그래서 Puerto Rico를 ‘푸에르토리코’로 적고 New York을 ‘뉴욕’으로 적고 El Salvador를 ‘엘살바도르’로 적고 San Salvador를 ‘산살바도르’로 적는다. 이렇게 적는 것이 합리적인 것일까? 개인적으로 이런 표기법에 불만이 많다. 영문으로 두 단어라면 우리도 두 단어로 적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푸에르토 리코, 뉴 욕, 엘 살바도르, 산 살바도르라고 적는 것이 원어에 더 가깝게 표기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에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푸에르토/리코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 푸에르/토리코라고 말하면서 푸에르토리코를 알지 못하는 상대방의 영어실력에 대해 의아해한다거나, 엘/살바도르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 엘살/바도르라고 얘기하면서 어떻게 이 나라를 모를 수 있는지 궁금해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희극인 것일 뿐이다.
원어와 상관없이 우리가 마음대로 끊어 읽는 것은 문학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인간의 모습을 나눌 때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나누기도 한다.
행동에 이르지는 않고 생각만 하는 인간형과 생각에 앞서 일단 행동부터 하는 인간형의 대명사이다. 여기의 돈키호테, 우리는 보통 ‘돈키호테’라고 한 번에 말하거나 ‘돈키/호테’라고 중간을 끊어서 말하지만 그 사람 이름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돈 다음을 살짝 끊어서 ‘돈/키호테’(Don Quijote)라고 말해야 한다. 돈(Don)은 존칭이고 키호테(Quijote)가 그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미스터/김’을 ‘미스/터김’이라고 말하거나 적지는 않는다.
세상 사람들 다 ‘푸에르토리코’ 또는 ‘푸에르 토리코’라고 말하고, 일가친척 모두가 다 ‘뉴욕’이라고 말하고, 동네 사람들 모두가 ‘엘살 바도르’와 ‘산살 바도르’라고 말하고, 친구들 모두가 ‘돈키호테’ 또는 ‘돈키 호테’라고 말한다 해도 ‘푸에르토 리코’ ‘뉴 욕’ ‘엘 살바도르‘ ‘산 살바도르’ ‘돈 키호테’라고 말하고 적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원어 Puerto Rico, New York, El Salvador, San Salvador, Don Quijote에 더욱 부합하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사족 하나. 기독교인은 모세라는 사람을 안다. 기독교의 성서에 출애굽기라는 글이 있다는 것도 안다. 출애굽기는 모세가 자신이 살던 땅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여정에 관한 기록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애’를 살짝 길게 발음하는 방식으로 ‘출애/굽기’라고 중간을 끊어 읽는다. 그런데 그렇게 읽으면 안 된다. ‘출애굽기’의 ‘애굽’은 이집트의 한자 음역이다. ‘애굽’은 한 단어이기 때문에 끊어서 읽으면 안 된다. 즉 ‘출애굽기’는 애굽(埃及)을 떠나(出)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여정에 관한 기록(記)인 때문에 ‘출/애굽/기’인 것이다. ‘출애/굽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