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제퍼슨 과학고 입학사정 재판 판결
2022-03-07 (월)
문일룡 / 변호사, VA
지난 2월 25일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고등학교 중 하나로 꼽히는 토마스 제퍼슨 과학고등학교 (이하 ‘TJ 과학고’)의 입학사정에 대한 재판의 판결이 발표되었다. 연방법원 버지니아 동부지원의 힐튼 판사는 원고들이 제기한 Summary Judgment 신청을 받아드린다고 하면서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가 2020년 말에 개정한 입학사정 정책의 효력을 금지시켰다.
지난 1년 반 이상 동안 적어도 페어팩스 카운티에서는 TJ 과학고의 입학사정을 두고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주민들이 이념적으로 뿐 아니라 인종적으로도 갈라지게 된 예민한 이슈였다. 소송도 둘 씩이나 제기되었다. 이번에 나온 판결은 연방법원에 제기된 소송이고,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순회법원에 제기된 소송은 아직 계류 중이다.
Summary Judgment란 사실 심리 없이 판사가 이미 제출된 서류들과 변호사들의 서면, 구두 변론으로만 심리하고 내린 판결을 의미한다. 즉, 사실 심리를 진행해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실관계에 있어 큰 쟁점이 없는 경우에 내려지는 판결이다. 힐튼 판사는 판결문에서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가 새로 채택한 입학사정 정책은 실질적으로 입학생들의 ‘인종적 균형’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것은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연방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무리 겉으로는 인종적 배경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애초 정책 변경의 목적이 인종적 분포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면 위헌이라는 것이다.
나는 TJ 과학고의 입학사정 정책 변경 논의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에 여러차례 나의 의견을 교육위원들에게 피력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변경된 정책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런데 이번에 내려진 판결이 나의 우려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교육감에게도 수 차례 나의 생각을 전했다. 물론 정책의 최종 결정은 교육위원회가 내리지만 교육감의 의견이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기에 교육감이 고려해야 할 점들을 전했다. 그러면서 내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축구 팀 가입을 시도했었던 때의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 (미국에서 10학년)을 마치고 1974년에 나는 미국으로 이민 왔다. 응당 11학년으로 입학해야 했지만 대학교 진학 전에 한 해라도 영어 공부를 더 하려고 10학년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9학년과 10학년만 다니는 학교가 따로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학교가 그 해에 처음으로 축구 팀을 구성했다. 나는 친구들의 추천으로 단지 발재간이 다른 미국학생들 보다 낫다는 이유로 축구팀에 가입할 수 있었다. 아니 사실 그 당시에 그 학교에서는 축구팀에 가입 희망 학생들이 많지 않았기에 누구든지 가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10학년을 마치고 11학년과 12학년들이 다니는 학교로 진학해 축구팀 가입을 시도했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그 학교에는 전체적으로 학생들 숫자도 훨씬 더 많았고 축구팀에 관심을 두는 학생들도 차고 넘쳐 철저한 심사 과정을 거쳐야 했다. 가입 심사 때 코치가 우선 단거리 달리기를 시켰다. 그 후 장거리 달리기가 따랐다. 코치는 순발력과 지구력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겼다. 발재간은 그 다음이었다. 나는 순발력과 지구력 그 두 부분에서 최하위권에 속했다. 그러니 결과는 뻔했다. 그리고 나는 두 말 없이 그 결과에 승복했다.
교육감에게 나는 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TJ 과학고 입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수학과 과학 실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실력은 입학사정을 하는 당시의 실력이지 먼 훗 날 가능할지도 모르는 실력이 아니라고 첨언했다. 교육감은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나 결국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번 판결에 교육위원들과 교육감 그리고 교육청의 변호사까지 모두 당황했을 것이다. 이미 그 판결에 대한 항소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나는 항소가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우선 입학사정 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로 인해 이념과 인종으로 분열된 지역 사회를 통합하고 치유하는 작업에 나서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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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