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를 생각합니다
2022-03-07 (월)
장철우 원로목사
삼월이 되면 파도가 밀려오듯 삼일절과 더불어 유관순 열사를 그리게 됩니다. 유관순은 삼일혁명의 꽃입니다. 처음 유관순의 전기를 쓴 전영택 목사는 “불란서혁명의 꽃이 잔 다르크라면 대한민국 3.1혁명의 꽃은 유관순 열사다”라고 했습니다.
잔 다르크는 영국군에 붙잡혀 화형을 당하면서도 애국충정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유관순은 어떤 고문을 당하였는가는 감옥에서 순국하기 전 남겨놓은 고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은 고통만은 견딜 수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아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이것이 유관순이 마지막까지 보여준 애국충정의 모습입니다. 형무소 기록에 열사의 사인은 방광과 자궁 파열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몇 년 전 유관순 열사의 고향과 그가 다녔던 공주의 영명, 서울의 이화학교를 둘러보고 순국한 서대문형무소를 답사하였습니다. 애국의 발자취를 따르는 순례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밤 밤새껏 꿈을 꾸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분의 영상이 그리움을 채워주듯 나타난 것입니다. 바로 이화학교의 난간이 보였습니다. 머리를 땋고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교실 밖 난간위에 나란히 서있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 틈 사이에 유난히 빛나는 별빛이 있었습니다. 일곱색의 영롱한 빛은 제 눈이 부시도록 빛났습니다. 잠시 후 그 빛이 어디론가 향할 때 제 혼이 빛 속에 빨려들듯 빛을 따라갔습니다.
그 빛은 별이 되어 이화의 교정을 천천히 한바퀴 돌더니 저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어느 사이 산을 넘더니 며칠 전 제가 찾아보았던 병천 지령리에 있는 유관순 집에 머물렀습니다. 이리저리 방들과 대청마루와 뜰을 둘러보고는 우물가 냇가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한참이나 마을 위를 맴돌더니 만세시위를 벌인 병천시장으로 갔습니다. 유관순의 아버지, 어머니가 일본순사의 총칼을 맞고 순국하신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별은 병천시장을 내려다보듯 우뚝 솟은 매봉산으로 올라갑니다. 산기슭으로 저를 이끈 별은 산 정상을 오르며 영롱한 일곱색을 보이며 진하게 타오르듯 그 빛을 찬란히 비추었습니다. 마침내 정상에 올랐을 때 별빛이 멈추더니 봉화불이 되어 타올랐습니다. 하늘도 대지도 환하게 대낮처럼 밝혔습니다.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습니다. 꿈에 보았던 찬란한 별빛과 매봉산에서 온 세상을 환히 밝힌 봉화불은 내 가슴, 아니 내 몸 전체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유관순 열사를 내 영혼이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너무 감사하였습니다.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는 유관순 열사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고 터질 듯 뛰는 심장을 누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하였습니다. 그후 열사의 갸륵한 애국혼, 순국에까지 이룬 그의 신앙심만을 가슴에 담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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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우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