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었던 어느 수필의 한 문장이 기억난다. ‘탄생(Born)과 죽음(Death)사이에 뭐가 있느냐는 질문에서, 정답은 선택(Choice)이더라는...’ 읽는 순간 내 답은 ‘삶’이나 ‘인생’이었기에, 조금은 생소한 귀결로 여겼었다. 그런데 내 생의 소풍이 노을로 접어들고 보니 비로소 알겠다. ‘선택’이야말로 명답이란 걸.
또한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도 심도 깊게 다가온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습니다./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면서/한참 서서 한 쪽 길을/../멀리 바라보았습니다./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훗날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놓았다고.
곰곰이 지나온 내 인생행로를 반추해보니, 운명적인 선택의 기로에 여러 번이나 서있었다. 그 외에 일상생활의 다반사에서도 갈등과 고민 끝에 내렸던 모든 결정들이 알고 보면 다 선택의 연장선상이었다. 심지어 인간관계마저도 ‘할 걸’과 ‘하지말 걸’의 모든 경우들이 기실 선택에 기반 해서였다. 그렇게 내 삶은 크고 작은 선택으로 쭉 이어져온 셈이었다.
문득 내 주변을 헤아려보니 멀어지거나 단절된 인연들이 제법 많다. 내가 순발력과 결정력에 취약하고 매사 소극적인 탓이었다. 그렇게 되게끔 오도했던 나의 모든 언행들, 역시 선택에서 파생됐던 터. 새삼 껄끄럽고 부끄럽다. 그러다보니 잠 못 이룰 때면 결과가 안 좋게 됐던 나의 오판들까지 되짚어진다. 순리로 치부하고 아프게 감수했던 숨어있던 상처들까지 떠올라 마음을 어지럽힌다. 심지어 안 가본 길에 대해서는 머릿속으로 소설까지 쓴다.
허나 얼마 남지 않은 여정! 늙고 쇠약해져 일모도원(日暮途遠)인데 자책하거나 회오하지만 말고,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하지도 말고 가자.
법정스님께서 ‘앞으로 새겨질 발자국, 삶의 자취도 마음 쓰지 말고 가셔요. 발길 닿는 대로 그냥 가는 겁니다. 우린 지금 이 순간 그냥 걷기만 하면 됩니다.’ 하셨다. 그 지침에 공명(共鳴)하며, 하루하루가 생의 보너스임을 감사하며, 묵묵히 걸어 갈 일이다.
때마침, 친구가 카톡으로 존 덴버(John Denver)의 ‘Today’란 노래를 보내줬다. 그 가사의 일부분에서도 한 가닥 위무(慰撫)를 얻었기에 적어본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신경 쓰지 말아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그런 약속으로 살 수는 없지요. 오늘이 바로 중요한 순간이고 나만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웃고 울고 노래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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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숙/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