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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연못의 역사를 아시나요

2022-03-02 (수) 이기춘 / 한사랑 종합학교 초대 교장,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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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월을 ‘아프리카 미국인 역사의 달’로 지키고 있다. 흑인들의 역사 얘기는 백인 위주의 역사에 가려져 회자 되는 일이 흔하지 않다. 며칠 전 시드니 트렌트(Sidney Trent)씨는 워싱턴 포스트에서 흑인노예 브리스터 프리맨(Bristo Freeman)의 생애를 재조명하고 있다. 우리의 이목을 끄는 것은 미국의 초기문단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작품 속에 프리맨의 얘기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전개는 보스턴에서 30마일 떨어진 콩코드(Concord)에 있는 월든 연못(Walden Pond) 숲이다. 월든은 매사추세츠 콩코드에 있는 462에이커의 숲이다. 콩코드는 영국식민지가 모국에 반기를 들어 혁명전쟁을 시작하는 첫 교전의 총성이 터진 곳이다.

콩코드는 1800년대 미국초기문단의 미국문학 작가들이 서로 교감을 나누며 살던 곳이기도 하다. 근처 살렘(Salem)에는 주홍 글씨(Scarlet Letter)와 일곱 개의 박공이 있는 집(The House of the Seven Gables)등을 집필한 미국 초기문단의 거장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이 살았다. 또한 1845년 때 콩코드는 미국 초기문단의 수필가이며 시인이며 철학자로 초자연주의 선도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이곳에 살았다.

소로는 미국 초기문단의 가장 영향력 있는 초자연주의자(Transcendentalism)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과 함께 미국문단의 선구자였다. 소로는 당시 27살의 나이로 초자연주의의 교리를 몸으로 체험하기 위해 스스로 월든 숲으로 들어가 초막집을 짓고 그 속에서 나무열매와 자기가 기른 채소를 먹으면서 2년을 지냈다.
그는 자연이 그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이며 그가 자연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려고 했다. 소로는 숲속에 살면서 월든(Walden)을 비롯 16편의 수필을 집필했다.


얘기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보다 먼저 월든 산림 숲에 들어가 살던 흑인노예 브리스터 프리맨이 있었다. 1744년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나 9살 때 콩코드 한 백인주인의 사위에게 선물로 주어줬다. 노예 프리맨(Freeman)은 새 주인 존 커밍스(John Cumings)밑에서 해방을 꿈꾸며 25년이나 열심히 일했다.
당시 그 흑인은 주인 이름 커밍스(Cumings)를 버리고 그이 본명 브리스토 프리맨(Bristo Freeman)을 찾아 쓴 용감한 사람이었다. 프리맨은 1785년 월든 숲 대지를 혁명전쟁 군인 때 저축한 월급으로 구입해 오두막을 짓고 가족들과 숲속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든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했지만 영양 부족으로 가족들이 죽어갔다. 프리맨은 부과된 세금을 내지 못해 결국 그가 소유하고 있든 대지마저 잃게 되었다.

1845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숲으로 들어가 자연이 우리 인생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했다. 뉴욕 주 펄체스 대학교(Purchase College) 엘리스 르마이어(Elise Lemire) 교수는 그녀의 평론에서 소로는 콩코드의 문학적 선각자며 초자연주의자인 랄프 월도 에머슨과 함께 우리 인생을 감동력 있게 표현하는 뛰어난 작가이다.
또한 그는 심오한 자연의 통찰자이며 철저한 노예철폐주의자다. 그러나 르마이어 교수는 노예 프리맨의 얘기에서 소로는 그의 숲속 생활에서 “자유로이 동리를 드나들 수 있었지만 흑인에게도 그런 선택이 있었는가?” 라고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월든 숲속에 살던 “흑인들은 굶어서 죽었다”라고 기고문에서 르마이어 교수의 말을 인용해 밝히고 있다.

<이기춘 / 한사랑 종합학교 초대 교장,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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