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에서는 20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으로 크지 않은 나라가 지금 용광로처럼 온통 대선열기로 뜨거워지고 있다.
이번 대선으로 대한민국이 이전의 발전과 성장을 발판으로 보다 더 나은 선진국의 대열에 당당하게 합류하는 그런 나라가 될 것으로 믿는다. 코로나19가 이제 서서히 머리를 숙이고 사람들의 뒤편으로 물러가는 이 즈음에 대한민국이 일취월장 발전할 수 있는 스프링보드가 될 것 같아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 그 말은 다르게 말하면 사람은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모일 때마다 요즈음의 화두는 대선이다. 아니 꼭 이 때만 아니라 선거 때가 되면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모두의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
그 이유는 사람이 사람답게, 나라가 나라 되게 할 수 있는, 곧 사람이 원하고 바라는 한 가지, 행복하게 살고 싶은 꿈과 욕망을 이루는 전체적인 제도가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모든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이 정치이다. 최고의 결과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기에 정치는 종합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이스어로는 국민이나 도시를 의미한다.
그러기에 사람사는 곳에 올바른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정치이다. 그래서 올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가치와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정치신념이다. 그 정치신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 귀에 흔히 들리는 민주, 보수, 자연, 환경, 사람, 정의, 공정, 노동, 평화, 복지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신념은 모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사람에 의해서, 사람에 의하여, 사람을 위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신념은 바로 서야 하지만 시대와 환경과 사람에 의해서 바뀌어 져야 하고 바뀔 수 밖에 없다. 정권과 정부와 제도와 조직과 법이 바뀌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역사를 보면 어떤 것도 변하지 않고 하나만으로 지속된 정치신념을 찾아 볼 수 없다. 정치는 역사와 함께 변하고 흘러가는 것이다. 한창 기뻐할 것도, 계속 슬퍼할 것도 없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의 신앙은 그렇지 않다.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신앙도 변하고 바뀔 수 있다. 신앙이 변하고 달라지는 것은 정치적인 신념이 변하는 것과는 수준이 다르다. 신앙이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은 변화나 변절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에베소서3:17)
믿음은 너무 깊게 박혀서 뿌리를 파서 빼낼 수 없고 터가 굳어져서 흔들릴 수 없는 것이다. 믿음, 곧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도 결코 굽히지 않는 절개와 의리, 인내를 가져야 한다. 시쳇말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꺾이지 않아야 한다. 살기 힘들어도 참고 견디어야 하는 것이 신앙이다. 그러나 정치신념은 역사적인 상황과 국민의 형편에 따라, 변화될 수 있고, 또 변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힘이고 생명이다. 변화되지 않는 정치는 생명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신앙은 그럴 수 없다. 신앙은 오직 하나이다. 신앙의 세계에서 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신앙은 신념보다는 더 희생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신념은 보이는 사람을 향하지만 신앙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하기 때문이다. 신념이라고 하면서 고집하거나 신앙이라고 하면서 변절하는 것은 오류이다. 신념과 신앙이 제 기능을 다하는 세상을 사는 최선의 나라, 최고의 인생을 누려보고 싶다.
<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