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9일(미국일자 3월 8일)은 제20대 한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날이다. 1948년 이래 우리는 19대에 걸쳐 12명의 대통령을 겪어왔다.
오랜 왕권 체제하에 익숙해 왔던 우리 백성 체질에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동안 숱한 시련과 혼란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1인 장기집권 또는 쿠데타, 탄핵, 외세 압력 등으로 우여곡절 험난한 파고를 헤치고 현재에 이르렀다. “민주주의는 백성의 피눈물을 먹고 자란다”라고 했던가. 국민의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김영삼ㆍ김대중ㆍ김종필 세 명의 김 후보와 노태우 후보의 대결 때부터였던 것으로 소급된다.
비록 내분과 과열경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갖가지 추태로 점철된 선거였지만 대통령이 새로 선출될 때마다 국민들은 막연하게나마 뭔가 희망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대선 양상은 어떤가.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던 민주적 선거분위기가 급속히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국민들의 정치 혐오감을 넘어 절망감을 일으키고 있는 상태다. 전 국민적 저항이 분출될까 두렵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후보들의 관심에 민족적이며 역사적 최대 숙원인 남북통일 항목이 실종된 것 같다. 심화돼 가는 빈부격차 해소와 세대 간 지역 간 균형 발전에 대한 명쾌한 대안도 제시된 것이 없다. 국민의 48%가 무주택 처지다. 청소년 세대를 국가 미래 발전 번영의 원동력으로 육성해야 하는데도 후보들은 이들을 회유 포섭 대상으로만 유인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이와 같이 막중한 국내외적 과제들 앞에 후보들이 보여주고 있는 자세는 어떤가. 시정잡배 수준의 저질 쟁투,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난장판을 연출하고 있지 않은가.
‘최악 아닌 차악 선출’이라는 자조적 개탄이 유행어로 나돌고 있다. 눈만 뜨면 벌어지고 있는 후보들의 하한선을 넘는 경거망동으로 정치 허무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더하여 ‘단일화 소동’으로 한층 더 선거 분위기가 점입가경이다. ‘어퍼컷’이 나타나자 ‘앞발차기 송판 격파’… 더 이상 이어갈 말문이 막힌다.
최근 주요 외신들이 보는 한국의 대선 분위기도 한결같이 멸시와 비아냥 일색이다.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뉴욕타임스는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한국 발음 그대로 인용하면서 한국 대통령 선거 분위기를 ‘어리석은 정치인들의 싸움’이라는 식으로 묘사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도 “한국대선, 스캔들과 모욕으로 망가져”라는 제목으로 역대 최악 비호감들의 선거라고 혹평했다. 이 신문은 또 이재명 후보의 ‘토지개발 비리 스캔들’, 부인 김혜경 씨의 권력남용, 아들의 불법 도박 사례를 적시하고 윤석열 후보는 무속인 참모 대동, 장모의 재정서류 위조, 부인 김건희 씨의 비판적인 언론인 협박, 성추행 피해자 모욕 등의 비밀 녹취록에서 밝혀져 저급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외신들의 눈에 우리 720만 해외동포들에 대한 ‘선거 규제법’ 내용까지 드러나면 국가 체면은 얼마나 더 곤두박질쳐야 하는 건지 개탄스럽다.
무사히 대선을 치른다 한들 그 이후도 걱정이다. 여대야소 정국이 실현될 경우 예견되는 대통령과 의회의 충돌과 엇박자가 불 보듯 뻔하다. 여당 재집권이 실현될 경우 이념ㆍ사상의 대립 격화로 사회 불신이 증폭되고 엄청난 불법, 부정부패 비리가 규명되지 않을 공산이 커 정의와 공정을 앞세운 국민저항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한 정치인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보면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대선을 맞는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격언이다.
우리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저질 품격, 설상가상으로 일부 언론의 편파 보도 행패, 일부 여론조사기관의 지지율 조사 발표, 숫자 농간 등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우리 국민들이 정의롭고 냉정한 지혜를 발휘하리라 믿는다. 우리는 매번 대통령을 선출해 놓고 나서 땅을 치며 후회를 해오곤 했다.
역대 대통령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오점을 남겼다. 망명, 중도하차, 피살, 사형선고, 자녀 구속, 자살, 탄핵 등 아픈 역사가 우리 대통령들 기록의 전부다.
오는 3월 9일 새로 선출될 대통령도 제대로 임기를 채우기 힘들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벌써부터 무성하다.
우리 모두 눈 똑바로 뜨고 ‘차악’일지언정 그 범위 안에서나마 최선을 택하라고 고언 드리는 바이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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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