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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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즐거움

2022-02-22 (화) 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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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네가 노래가사가 아니라 성경구절인 것도 몰랐던 나는 대학때 드라마에서 신부와 여인의 이루지 못한 금지된 사랑이 내 운명이 될 것같아 어느날 작정하고 내가 아는 단 하나인 명동성당에서 6개월 교리를 받고 얼뜨기 신자로 세례를 받았다.

그때부터 신부님들은 나의 짝사랑이 되었다. 처음엔 어찌하여 저토록 멋지고 젊은 남자가 신부가 되어서 마음을 아프게 할까 생각하며 잘 보이려고 교리를 빼먹지 않고 맨 앞에 앉아 졸지도 않고 만점을 받으려 고3보다 더 열심히 다녀 세례를 받았다. 그뒤로는 꿈에서 깨어나 서너번 다니다 시들해져 성당을 보면 비실비실 피하고 미국에 오기까지 냉담을 하고 발을 끊었고 사랑은 변하는게 아니라 움직이는 거라며 나는 속세의 남자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나니 이번엔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한결같이 맑고 건강하여 아무리 반성해도 맘 속으론 아이구 아까운 신랑감인데 하고 고운 수녀님을 보며 어쩔꺼나 아까워라 하는 딸 아들 가진 부모 욕심만 앞세우게 되는 사랑을 하게되었다. 손주들이 늘어나고 할머니가 되서야 흐뭇하게 신부님을 바라보는 나는 어찌하여 변함없이 속물일까?


아직도 나는 신부님 앞에선 부끄러움을 탄다. 이글을 쓰면서도 혹시라도 누가 될까 조심스럽지만 솔직함은 나의 기본이다. 신부님과 인증샷을 찍을땐 가슴이 두근거리고 미사후 다소곳이 얌전하게 안녕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일주일은 마냥 행복하다.
미국에 온 뒤부터는 제발이 저려 성당을 살금살금 나가면서 좋은 성당식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혹시라도 남편과 다른 가족들이 불편할까봐 주로 호젓한 분위기의 새벽미사를 혼자 다녔다.

그래도 교중미사 후에 먹는 점심, 야유회, 구역모임, 부활절, 성탄 때도 웬지 눈치가 보여 조심스레 쓸쓸하게 다니며 어설프지만 간절하게 기도만 하면서 20년을 지내왔다. 남편은 언젠가는 성당엘 가겠다고하고 누군가 종교를 물으면 안가는게 아니라 못가고 있다며 마누라가 성당에 다닌다고 나를 신앙심 깊은 이로 만들어줬다.
그동안 언제나 나의 소원 일순위는 남편과 성당가기이고 그다음 우리 가족 누군가가 성당에 가는 것이다. 때가 되면 가겠지 싶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지난해에 코로나19에 걸려 죽을 둥 말 둥 하면서 당신은 마누라 장례를 성당에서 못치루겠다하니 새해부터는 갈거라며 손가락걸며 약속을 하고 소같이 부지런히 일하는 걸 줄여나갔다.

망할놈의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운동과 수영을 못하니 지난해는 무릎 관절염으로 많이 아팠다. 속 터지는 미국의료서비스와 의사를 욕하면서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면서 나는 혼자서 걸을수가 없었고 장애인 주차증을 받아온 날 대성통곡을 하며 엉엉 울고, 집안에서 사용할 자주색 예쁜 워커를 받은 날도 질질 짜며 울적해졌다.
성탄과 새해미사를 가지못해 우울한 나에게 슬그머니 드디어 성당엘 같이 간다고 나서니 눈물이 나도록 고마왔다. 새해 첫미사를 드리고 교리공부 중인 수녀님께 남편이 20년만에 왔다고 부탁하니 눈물 많은 나를 어여삐 여겨 부족한 나머지 특별 교리공부를 가르쳐 줄 대부님도 연결해주셨다.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져 우리는 성가정이 되려고 노력한다.

덕분에 나도 일요일엔 교리공부하고 미사때엔 성가도 크게 부르고 기도문도 배우고 점심후엔 특강도 듣고 저녁 늦게까지는 나머지 교리공부를 한다. 이제 2월 말이면 남편은 베네딕토가 되어 베로니카랑 어울리는 짝짜꿍으로 거듭날 것을 기뻐하며 기다린다.
그때까지는 어떡하던지 나는 말 잘 듣는 애교 많은 마누라가 되어 뭐든지 호응하며 대령해야 한다. 다만 늦바람이 더 무섭다던데 너무 앞서가는가 싶어 자제를 하며 숨고르기도 해야겠다. 거기에다 보태서 희한하게도 내게는 은총인지 기적인지 알 수 없지만 어차피 수술을 할거지만 요즘은 신기하게도 무릎이 덜 아파서 쌩쌩하게 잘 다니는 중이다.
신부님에 대한 짝사랑에서 시작된 성당가기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어 함께 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헤야겠다.

<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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