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알아 두면 유용한 고사성어 3

2022-02-17 (목)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크게 작게

▶ 三顧草廬(삼고초려)

삼국지(三國志)에서 신출귀몰(神出鬼沒)한 전략으로 조조(曹操)의 100만 대군을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물리친 제갈량(諸葛亮)만큼 신비롭고 경이로운 인물은 많지 않다. 삼고초려는 막강한 조조의 세력에 대항하여 관우와 장비처럼 용감무쌍한 장수는 있으나 백전백승의 전략을 만들어낼 군사(軍師)가 없어 고민하던 유비(劉備)가 신하인 서서(徐庶)의 추천으로 초야에 묻혀있던 자신보다 20살이나 아래인 제갈량의 초가집(草慮)을 세 번이나 찾아가(三顧) 결국 그를 모시는 데 성공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제갈량과 유비의 만남은 사실상 현대의 인재(人材) 유치 인터뷰에 해당하니 제갈량은 유비의 지도자로서의 됨됨이를 보았고, 유비 또한 제갈량의 탁월한 정세 분석과 거시적(巨視的) 비전 (vision)에 탄복하여 결국 유비의 삼고초려가 결실을 맺게 된 것이었다. 그 후 삼고초려는 자신보다 연배나 지위는 아래인 우수한 인재를 모시기 위해 윗사람이 찾아가 설득하고 모시려 할 때 쓰이는 말이 되었다.

이 고사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서서의 역할이다. 서서는 유비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으나 조조의 위계(僞計)에 속아 조조에 의해 볼모로 잡혀 있는 노모(老母)를 만나기 위해 유비를 떠나게 되면서 자신보다 탁월한 역량의 제갈량을 유비에게 군사(軍師)로 천거하였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질투하고 모함하여 제거하는 일이 난무(亂舞)하던 어지러운 그 시대에 서서는 과연 대인배(大人輩)라 아니할 수 없고 또한 그런 신하를 두었던 유비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훌륭한 인재를 찾는 현대의 지도자들도 주의깊게 볼 점이다.

제갈량은 천재적인 전략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인품이 훌륭하여 존경을 받았다. 조선의 제19대 왕인 숙종(肅宗)은 당시 당파들의 정치 논쟁으로 정사(政事)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그는 또한 제갈량을 열렬히 흠모한 왕으로 유명하다.
숙종은 궁중의 화공(畵工)에게 명하여 제갈무후(諸葛武候)의 초상을 그리게 하고 그림 속에 그를 기리는 글을 친히 써넣었다. 그 글은 ‘승상의 위대한 명성은 우주에 영원히 드리워졌다’(丞相大名宇宙永垂 승상대명우주영수)로 시작하여 ‘같은 시대에 태어나 함께 세상을 다스려 보지 못함이 안타까워 공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이 글 속에 싣는다’(恨不同時天職共治惟將敬慕聯寓贊辭 한부동시천직공치유장경모연우찬사 )로 맺고 있다.

제갈량과 같이 겸손하고 사욕이 없으며 공사가 명백하고 뛰어난 지략과 경륜으로 자신을 보필하여 나라를 함께 경영할 수 있는 신하가 없음을 숙종은 이 글에서 한탄하였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1960년대 미국의 우수한 한인 과학 기술자들을 주위 참모들의 도움으로 찾아내고 그들을 한국에 유치하기 위해 지극 정성으로 만남과 편지 등으로 꾸준히 호소하여 결국 귀국을 결심하게 함으로써 마침내 한국의 과학기술 입국의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일화는 유비의 삼고초려와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