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버지니아 주에서 두 명의 한인계 부장관들이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흐믓했다. 나와 소속 정당이 다른 주지사이지만 우리 한인 동포들에게 제공한 기회에 감사한다. 그리고 수고하게 될 그 두 사람에게도 기대가 크다. 그러면서 과거에 내가 행정직에 가졌던 욕심을 회상해 본다.
맨 처음은 8년 전 맥컬리프 버지니아 주지사 당선 직후였다. 그러나 욕심이 있었다고 하지만 내가 나름대로 어떤 적극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그러니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것이다. 나의 바람이 그 만큼 크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 후 2016년에는 다른 욕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그 해 11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나는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팀 케인 연방 상원의원과 그의 부인인 앤 홀튼 여사와 친분이 있었다. 특히 버지니아 주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고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가르쳤던 홀튼 여사는 나의 교육위원 활동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한 번은 내가 의장으로 있을 때 홀튼 교수가 제자들을 인솔해 회의장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사전 요청에 따라 나는 회의 중 홀튼 교수와 학생들을 따로 만나 교육위원회와 내가 이민 와 교육위원으로 선출되어 활약하게 된 이야기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래서 선거 전에 홀튼 여사에게 연방정부 교육부에서 일하고 싶다는 나의 희망을 피력하고 도움을 청했다. 초중고등교육 담당 차관보 자리에 관심이 있다고 얘기했다. 나는 어쩌면 홀튼 여사가 교육부 장관직을 맡을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홀튼 여사는 나의 바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었다. 그리고 일단 선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그러나 뜻밖의 선거 결과가 나오자 나의 바람과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 후 내가 다시 욕심을 낸 것은 2017년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였다. 사실 민주당 후보가 될 것으로 여겨지던 랠프 노담 당시의 부지사가 2016년 초에 선거 운동차 내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 때 나는 용기를 냈다. 그가 주지사에 출마한다면 지지할 용의가 있고 당선 후에는 교육부 장관으로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나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은 그가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만남이 가져다 주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나의 당돌한 제안을 바로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노담 후보와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대화를 나눈 것은 2017년 11월의 선거 바로 이틀 전 밤이었다. 선거 판세에 안심할 수 없던 상황에서 노담 후보는 민주당 표밭인 페어팩스 카운티를 찾았다. 그리고 민주당 사무실 주차장에서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격려 유세를 벌였다.
그런데 그 날 밤 비가 상당히 많이 내렸다. 날씨도 제법 추웠다. 그 때 나는 우산을 들고 가능한 그의 눈에 띄려고 노력했다. 키가 작은 나는 다른 사람들을 밀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연설이 끝난 후 훨씬 더 큰 키의 그를 내 우산 아래로 불러 들일 수 있었다. 우산 든 손을 최대한 치켜 올리고 말이다.
그 때 그는 나를 쳐다 보며 ‘Let’s talk after the election.’이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당선이 되자 그와의 재회는 그의 4년 임기 마지막 해에서나 이루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배신감을 느꼈던 내가 그가 참석하는 모든 행사들을 피해 오다가 한인회 주최의 주지사 초청행사에서 동포 사회의 일원으로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해야겠다는 내 나름대로의 사명감이 들어 참석했던 자리가 전부였다.
물론 나는 노담 주지사 당선 후 교육부 장관 자리에 정식 절차를 밟아 지원했었다. 그리고 인수위원회의 인터뷰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서너명으로 압축된 최종 후보군에 속했다. 그러니 전혀 기회가 안 주어졌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교육부 장관으로 최종 선택된 인물과 나 자신을 놓고 비교해 볼 때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노담 당선자가 택한 인물은 퇴역 하사관 출신의 젊은 무슬림계 중학교 교사였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선거 후 얘기하자던 자신의 말을 선거 후에 거둬들이는 것을 용서하기 힘들었다. 욕심이 미움을 낳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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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