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반에서 키가 비슷하거나 사는 동네 방향이 비슷하거나 아니면 성격이 비슷(어느 경우는 정반대 경우도 있지만)한 경우 자연스럽게 동무들 중에서도 좀 더 친밀하게 느껴져 늘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녀 때론 다른 급우들의 시샘을 받기도 한 친구, 짝꿍을 가졌었던 기억들이 학창시절을 보냈던 우리들 대부분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즈음 그런 사이라면 세상이 온통 이상해져 동성애자 사이가 아닌가 하며 의심하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필자의 경우만 하더라도 중학교 3학년 시절 겨울에 도봉산 등정 후 야산 노숙(텐트 치고)을 할 때 한 침낭에 어린 두 놈이 함께 들어가 마주 안고 추위에 달달 떨며 잠을 청하던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니 오늘날 누가 들으면 해괴망측한 행동이었을까?
며칠 전 평소엔 아옹다옹 잘 싸우던 집사람이 원인 모르게(나중에 약물 부작용으로 판명) 갑자기 아팠다. 본인도 겁이 나기도 했겠지만 파리해진 모습을 보니 너무 애처롭게 보였다. 그 당시는 아무 말을 아니 하였으나 나중에 회복 후“그래도 난 당신이 워걱거리며 큰소리 내고 잔소리 하는 게 빌빌대며 힘없는 모습 보이는 것보다 더 나으니 다시는 그렇게 아프지 말게!”하였다.
20-30대 신혼 때는 그처럼 얌전하던 사람이, 자신의 말로는 80대를 향하는 망팔(望八)의 나이에 접어든 호랑이 할미가 되었다. 그래서 큰소리로 이빨 빠진 늙은 사자 남편에게 잔소리함이 습관화되기도 하였겠지만 일종의 낙(樂)이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처구니없지만, 남편인 필자 생각에도 몸이 아파서 핏기 없이 창백해져 빌빌대는 집사람보다야 호랑이 노릇 즐기려는 그녀가 오히려 더 나은 것 같으니 사람의 요상한 마음인가 한다.
아픈 경우인데도 이럴진대, 부부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날 때 남은 한 사람, 짝꿍의 한쪽 마음은 어떠할까?
부모 자식, 부부도, 친구도, 친지도 영원한 이별인 경우 그 애타는 마음을 어느 대문호도 적절한 표현을 못할 것이리라.
어릴 적 포근하고 애정 담긴 시골생활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수필들을 가끔 신문에 기고하시던 수필가의 글이 더 이상 보이질 않아 의아해하던 차 우연한 경우로 그 사연을 알게 되었으니 배필을 잃은 때문에 절필을 하셨다고 한다. 그 심정을 어느 누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런지?
짝꿍의 마력은 있을 당시는 그 위력을 모르는 일 이겠으나 일단 끊어진 뒤에야 알게 됨이 인간의 한계, 속성인 듯싶다.
오늘도 한 미망인과 대화를 나눴다. 서부와 동부의 먼 거리이나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겉으론 의연하신 듯한 70년 짝꿍과의 이별의 고통을 감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오죽하면‘ 천생 연분’,‘찰떡궁합’ 등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소위 ‘잉꼬부부’들은 신의 질투를 받기 쉬우니 너무 내세우려말고 적당히 일부러라도 싸우는 척이라도 하여 신마저 혼란스럽게 하여 짝꿍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기지를 발휘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우리 부부는 그런 면에선 이미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니 이런 걱정은 안해도 무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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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