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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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하여

2022-02-05 (토) 김미혜 / 한울 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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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프 갭(Hope Gap)’은 영국 남부의 호프 캡이라는 해안가 절벽에 위치한 마을에서 사는 평범한 부부의 이야기다. 29년을 함께 살아온 중년의 부부는 여느 부부처럼 한 식탁에서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한다. 그녀는 종종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식탁을 엎어버리기도 한다. 남편을 아무렇지도 않게 때리기도 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불만을 표출하지만 남편은 애써 모른 척한다. 같이 마주보고 있지만 사실 등을 돌리고 있고 한 공간에 있지만 그들은 다른 세계에 있다.

아내는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다시 남편과 잘해볼 마음으로 희망을 품고 돌아왔는데 그동안 남편은 아들을 불러서 집을 떠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오랜 세월 함께 했지만 서로의 마음을 너무 몰랐던 두 사람은, 29년을 살았고 노년을 바라본다고 해도 언제든 결혼기념일은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에게 항상 따뜻함과 위안을 주는 어머니 그리고 나의 스승이자 미래의 나의 모습인 아버지, 아들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없음을 보며 괴로워한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가정을 이루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부부는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결혼기념일이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생일보다 결혼기념일을 더 기뻐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한 살 더 나이 먹고 생일 케이크에 초가 하나 더 늘어나는 생일에는 시큰둥하지만, 이 기념일만은 유일하게 내가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를 위해 아이들이 볶음밥을 준비하고 제빵이 취미인 딸이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주었다. 이제는 컸다고 설거지까지 마무리해놓는 센스까지 발휘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 행복 그게 뭐 별건가. 내가 가진 것을 볼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이것이 바로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다. 앞으로 우리 두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함께 걸어가야 할까.

칼릴 지브란의 ‘결혼에 대하여’ 한 구절을 읊는다. “그대들의 공존에는 거리를 두라, 천공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도록.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천공의 바람이 춤추도록 서로의 공간을 허용할 수 있는 사랑을 이어가고 싶다.

<김미혜 / 한울 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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