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보내온 글 중에 가슴에 와 닿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과거는 해석에 따라 바뀝니다. 미래는 결정에 따라 바뀝니다. 현재는 지금 행동하기에 따라 바뀝니다. 바꾸지 않기로 고집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끝없는 성숙입니다. 공감이 가는 내용으로, 우리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로 생각됩니다. 아픈 과거도 해석을 잘 하면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분명한 뜻이 있어서 아픈 과거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성숙을 향한 디딤돌로 생각하면 됩니다. 미래는 현재 내가 ‘어떤 선택을, 결정을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정말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결정해야 합니다. 현재는 지금 하는 말과 행실의 연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말하기 전에,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잠깐이라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연속이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제자훈련, 신앙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의 모습을 닮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좀 더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떠날 때쯤이면 거의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3-14)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나이 든 어른이 우유병을 빨고 있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신앙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젖병을 물고 있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냥 이대로 좋다고 고집하고 있다면 늘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냥 계속 이렇게 살겠다’ 라고 고집하면 결코 성숙할 수 없습니다. 아니 정말 신앙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생명력이 있기에 그냥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씨가 뿌려졌으니 싹이 나고, 가지에 잎이 생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햇빛과 수분을 받게 된다면 말입니다. 햇빛과 수분을 받지 않고 거절하면 씨가 뿌려져도 아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새해를 맞고 벌써 한달이 지났습니다. 혹시 새해 들어 한 결심이 벌써 흐려진 것은 아닌지요. 아니면 여전히 나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안 바뀌고 그냥 이렇게 살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닌지요. 얼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자기 연민으로, ‘나는 원래 그래, 그런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든지,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나? 세상이 나를 타락하게 만들었지, 원래 인생이라는 것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뭐’ 라든가, ‘나만 그런가, 다른 사람도 다 그런데 뭐’ 하면서, 과거의 일이나 현재의 삶에 대해 불평하거나, 아내나 자식들을 원망하면서 그들이 자기에게 더 잘해 주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하며 신세타령 하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나요? 아니면, 무슨 교훈을 듣고, 내주하는 성령께서 하라고 명령하면 그저 ‘노력하는 중이다’(I try) 라고 말하며,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합니까?
중요한 것은 ‘원함’입니다. 성숙해지고자 하는 간절함, 갈망입니다. 나는 스스로 바꿀 수 없지만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찾고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켜 주실 수 있고,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성숙해지기를 원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나이는 먹어가는데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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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일 / 목사(가든교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