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나빠요~!”
2004년 한국 KBS의 ‘폭소클럽’에 등장한 개그맨 정철규가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 노동자 ‘블랑카’라는 인물로 나와 만든 유행어다.
‘블랑카의 이게 뭡니까 이게’라는 제목의 코너를 통해 블랑카의 입을 빌려 당시 한국 사회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겪는 학대, 억압, 차별, 폭력 등을 고발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함께 회자되었던 유행어였다.
“사장님, 나빠요”라는 유행어가 나온 지도 어언 18년이 되었지만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대우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18년된 개그맨의 유행어를 다시 소환한데는 이유가 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미국에서도 최근 들어 “사장님, 나빠요”라는 표현이 임금 노동자층을 중심으로 나올 법한 일들이 산업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 제공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가뜩이나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업계에 일손 부족이 심화되자 오미크론 확진자라도 무증상일 경우 출근해 근무를 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오미크론 감염 증상이 델타 변이에 비해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무증상 확진자의 업무 복귀는 본인뿐 아니라 동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임금 노동자들의 우려는 크다.
연방 인구조사국이 지난해 12월29일부터 올해 1월10일까지 오미크론 감염과 관련해 직장에 출근하지 못한 임금 노동자의 수는 880만명. 미국 전체 임금 노동자의 6%가 코로나19로 직장을 비우고 있는 것이다. 오미크론 확진으로 인해 직장에 나가지 못하는 임금 노동자가 폭증했다.
식당이나 호텔 등 저임금 노동자들의 40% 가량이 유급 병가 혜택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 보니 오미크론 확진에 따른 아픔과 불안한 마음으로 직장에 나가 돈을 벌거나 아니면 수입이 줄어들어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양 극단의 선택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오미크론 확진을 받았거나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임금 노동자들이 자가 격리를 요구해도 업주가 업무 복귀 지시를 주면 이를 거부하는 것이 어려운 게 임금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어떻게 보면 오미크론 확진이라는 폭탄을 안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격인 셈이다.
이 같은 우려의 확산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은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지침이다. 지난달 말 CDC는 방역 지침을 개정해 증상이 경미하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는 임금 노동자가 보다 빨리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격리 기간을 기존 10일에서 5일로 단축했다. 특히 직장의 인력 수급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면 격리 기간을 완전히 폐지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지침은 당장 미국 의료계에 적용되면서 일부 병원에서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있는 유증상 감염자의 업무 복귀를 유도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면서 간호사를 중심으로 병원 인력 중에서도 격리 대상인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가 급증하면서 일손이 심각하게 부족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월스트릿저널(WSJ)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임금 노동자들의 결근이 잦고 아픔을 참고 일하는 임금 노동자가 많다는 것은 가까운 시일 안에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성 전망을 내어 놓기도 했다.
인력난에 임금 상승으로 인한 경영 부담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오미크론 바이러스 감염으로 직원들의 결근이 늘어나면 생산성 하락이라는 문제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 경영주와 업주도 난감한 상황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증상 확진자의 업무 복귀로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오미크론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를 만들어내는 연결 고리가 된다는 점에서 자칫 소탐대실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18년이 지난 지금에도 블랑카의 “사장님, 나빠요”는 오미크론 감염 불안에 떨고 있는 미국의 임금 노동자들에겐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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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