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패랭이
2022-02-01 (화)
빌리 우 / 스털링, VA
얼마 전 한국일보에 실린 ‘옛날에 금잔디’라는 글을 읽으니 지난 시절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 둘째 누님이 동네 청년들과 함께 유성기를 틀어 놓고 이 노래를 많이 들었다. 유성기 안에 사람이 들어 있나 싶어 누님 방에 몰래 들어가 시커먼 상자 옆을 열어 보니 사람도 없고 먼지 하나 없는 빈 상자여서 요상하게 느꼈다.
60여 년 전 학생영어 월간지에 실린 윤보선 대통령에 대한 글을 읽어 보니 당숙이신 윤치호씨가 독선생(개화기 때 가정교사를 독선생이라 불렀다 함)으로 부터 영어를 배워 많은 외국 노래를 한국말로 번역했는데 ‘메기의 노래’도 있었다.
브라질의 상파울로로 이민 갔을 때였다. 이민 선배가 사는 집 아래층을 빌려 썼다. 방 하나,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 있는, 바퀴벌레가 사는 헌집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침대 쿠션을 벽에 세우고 아내와 나는 미싱을 돌려 자수를 놓고 미취학 어린 아들과 딸이 실밥을 따고 뒷정리(시야게)를 하면 밤 12시였다.
일이 끝나면 청소하고 쿠션을 눕혀 자고 손이 빠른 아내는 계속 미싱을 돌렸고 나는 밥과 설거지를 하였다. 한참 놀아야 할 어린아이들마저 일을 돕는 처량한 생활에 사나이답지 않게 날마다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한번은 밥을 차려 놓고 아내에게 식사하라 하니 “물건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하는데 뜨거운 밥을 언제 다 먹고 일하는 거야?”라며 호된 소리를 들었다.
울지 않던 아내는 어느 날 얼굴이 붉게 충혈돼 노래를 불렀다. “옛날에 패랭이 강가에 병은이와 앉아서 놀던 곳/ 한강물 푸르게 선하다 병은아 희미한 옛 생각/ 지금 우리는 미싱 밟고 병은의 머리 백발 다 되었네~~”
‘메기의 추억’을 개사해서 목이 메어 노래를 부르는 아내 모습에 나도 깊은 멜로디에 빠졌다. 아내도 처참한 이민 생활에 지쳤는지 맞선보고 결혼할 때까지 찾곤 하던 현재의 하남시 신장리 한강물과 건너편 남양주군 예봉산이 그림 좋은 병풍을 이룬 곳을 떠올렸나 싶었다.
거기에 앉아 미래를 꿈꾸며 사랑을 속삭이면서 풀 속에 한 송이 두 송이 보이는 패랭이를 꺾어 꽃 밑을 잡고 돌리면 시계처럼 뱅글 돌았다. 우리의 낭만의 추억이 길이 남아 있는데 현실은 눈물로 하루하루를 겪는 이민 고생이라서 그런 노래가 나왔나 보다.
이걸 한국에 계신 부모님에게 편지로 써 보냈더니 멀리 간 자식이 가슴이 아프셨는지 어머님께서 정성을 다 해 반투명 종이에 바느실로 꿰매어 조그마한 사각형 봉투를 만들어 패랭이 씨앗을 넣고 봉해 아버님께서 주시는 편지봉투 속에 넣어 보내 주셨다. 그 씨앗을 뒷마당에 심었더니 처녀 때 아내의 손 등살 같은 고운 잎이 나고 고운 줄기가 나고 예쁜 꽃이 피었다. 또 옛날 한강 가에 앉아 패랭이꽃을 따서 놀던 걸 재현했다.
그 패랭이 씨앗을 미국 올 때도 가져와 우리 꽃밭에 심었더니 45년째 해마다 어머니날을 조금 지나 꽃을 피우며 ‘옛날에 금잔디’ 대신 ‘옛날에 패랭이’ 노래를 부르게 한다.
<빌리 우 / 스털링,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