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희망 가운데 새해를 맞이하였다. 새해를 맞는 첫 마음은 ‘새로움’일지 싶다. 한 시인은 1월을 자신의 내면이 새로워지는 달이라 했다. “1월은 새로 시작하는 달, 고요히 홀로 촛불을 켜고, 내 안이 새로워지는 달…”(새롭게 가는 길, 박노해) ‘새로움’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일까?
‘새로움’은 새해 벽두에 잠깐 생각하다 이내 슬며시 마음의 벽장 속에 넣어둘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은연중 늘 새로움을 갈망하고 새로움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새해, 새날, 새봄, 새 학년, 새 집 등등 곳곳에 새로움을 뜻하는 접두어 ‘새’를 붙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사회의 모든 분야 역시 부단히 새로움을 추구한다.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마케팅 분야, 예술문화계, 학계, 심지어 정치계 등등 모두 ‘새로움’을 내세운다. 새로운 신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한 기업은 도태된다. 예술은 새롭지 않은 예술에 등을 돌린다는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문화예술가들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그 무엇을 작품에 담아내려 혼신의 힘을 다한다.
역사의 많은 위대한 분들은 늘 새로움과 함께 살았고, 새로움을 강조했다. 고대 중국의 은나라 탕왕은 세숫대야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나날이 새롭게 또 새롭게)’이라 새겨 세수할 때마다 새로움을 추구하며 살았다고 한다. 공자 또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하여 옛것을 배우고 익히는 가운데 새로움을 추구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움’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핵심이라 말씀하셨다.
무엇을 일컬어 참으로 새롭다 하는가? 우리는 TV나 신문을 통하여 수시로 ‘새로운’ 형용사가 들어간 광고를 보고 듣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의 순환과 이윤 추구를 위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며, 매일 수많은 새로운 상품들을 쏟아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쏟아내는 강요되고 부추겨진 새로움, 신상품의 이름으로 제품화된 새로움이다.
새로움이 시간적으로 이제 막 나온 새것(new) 혹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other)을 뜻하지만, 새로움의 참 의미는 사고나 가치에 대한 관점의 전환, 존재의 변화를 가져오는 깨달음, 인간다움의 확장과 완성의 뜻을 담고 있다. 시간을 벗어난 자리, 낡은 생각을 벗어난 자리, 마음의 눈이 열린 자리가 새로움이다. 한 시인은 새로움은 새 옷이 아니라 거짓 없는 마음 진실한 삶에 있다고 말한다. “… 벗이여, 새로움이란, 새 옷을 갈아입는 것이 아니네. 이렇게 거짓 없이 낡아 가는 것이네.”(새로움에 대하여, 김해화)
진정한 새로움을 만나야 한다. 늘 지나쳐 보던 꽃을 새롭게 본 적이 있는가? 무덤덤히 보던 부모님 얼굴의 주름살을 새롭게 본 적이 있는가? 굶주린 자의 힘없는 얼굴을 새롭게 본 적이 있는가? 늘 읽던 책이나 성경말씀이 번쩍 새롭게 와닿은 적이 있는가?
새로움이란 나와 무관한 사람이요 예사스럽던 내 주위의 ‘그 사람(other)’이 홀연히 나의 ‘그대(you)’가 되고, 한갓 미물이요 ‘그것(it)’으로 여기던 길가의 동식물이나 하늘의 새들이 문득 내가 되고 우리가 되는 신비스럽고 황홀하며 거룩한 자리이다. 새해 진리 안에서, 서로에게 배우며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롭게’ 사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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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