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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화(禍)와 비내면화(化)

2022-01-25 (화)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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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 시작된 COVID-19은 끝날 것 같으면서도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단순히 COVID-19만 잡으면 될 줄로 알았더니 델타 변이가 생겼고 지금은 오미크론 변이가 생겨서 아직도 비대면(Virtual) 모임과 회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컴퓨터나 전화로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것이 편하고 때로는 신기한 점도 있지만 이런 것들이 계속 장기화됨으로 인해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없지 않다.
대면으로 만나려면 여러모로 준비를 많이 해야 하지만 비대면은 여러가지로 편리한 점이 많다. 비대면은 직장 내에서의 여러 복잡한 인간관계과 직장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비대면의 반복된 모임이나 회의나 집회 같은 것들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대면으로 사람을 만날 때는 몸 전체를 보여야 하고, 또 얼굴과 얼굴로 만나기 때문에 눈과 눈, 그리고 얼굴 속에 비치는 느낌을 통해서 언어나 말 그 이상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심정의 언어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비대면은 얼굴만 보이면 되고, 느낌이나 감정을 충분히 숨길 수 있고, 또 여건이 어려울 때면 얼굴을 가리거나 목소리도 가릴 수 있어 존재는 있는데 실제로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 위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비대면이라는 기술적인 편리함을 넘어 우리가 지금 비대면 화((禍)를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능한 한 피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재앙 아닌 재앙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비대면화가 우리에게 은근히 비인간화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마비를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대면화의 반복은 결국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가끔은 또 어느 누구에게는 형식적이고 무의미한 비내면(非內面) 내면의 생활양식, 예를 들자면 회피, 위장, 체면, 가면, 형식같은 것들이다.


이것들을 한마디로 ‘비내면화’라고 말할 수 있다. 최소한 대면일 때에는 상사 앞에서 회의할 때에는 할 수 있는 대로 예의를 지키고, 외모와 내면에서 최소한의 성의를 다해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한 표현을 다해야 한다.
또한 좋아하면 악수하고 존경하면 머리를 숙이는 자세를 보였지만 비대면의 상황 속에서는 두 가지나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 것이다.
회의하고 커피를 마시고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또 TV까지 시청할 수 있는 이름하여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 것처럼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면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일석이조’라는 말도 있으니 비대면이 절대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경에도 “지금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린도전서13:12)”고 한 것처럼 육체적 대면으로 보는 것도 희미하다고 하는데 하물며 비대면으로 볼 때에는 오죽하겠는가?
혹시나 얼굴은 보여도 마음은 멀리 떠나있다면 그것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계속되는 비대면화(禍)가 고착된 비내면화(化)가 되기 전에 빨리 자유롭게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면서 내면의 얼굴까지 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란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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