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시니어
2022-01-20 (목)
최향남 / 몽고메리칼리지 재단 이사
엊그제 ‘Happy New Year!’ 를 외친 것 같은데, 1월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새해 소망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굳이 답을 하자면, 예년과 다름없이 소중한 가족들의 건강이 우선이다. 그리고, 코로나에 얽매이지 않고 나의 버켓 리스트를 정리하면서 후회없는 노년생활을 지내는 것이다.
지난 2021년은 연초부터 지인들의 사망소식으로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초부터 다시 갑작스러운 지인들의 사망소식으로 울적한 연말이 되었다. 그들 모두의 사인이 코로나19와 연관이 된 것은 아니지만, 잠시 내가 칠순을 앞둔 노인으로 성장하고 있기에 지인들의 잦은 사망소식을 접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젊음은 늘 싱싱한 풋과일과도 같지만 깊은 맛이 없다. 어렸을 때 내 눈에는 전혀 예뻐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이쁘다’ 고 반복하는 노인들을 ‘시력이 잘못되었다’고 무시했던 나를 떠올려본다. 그때의 나는 그야말로 시건방진 가시내였다. 55년 이상을 곁에서 지켜준 절친에 의하면, 나는 평상시에 가슴을 활짝 편 채 그리고 고개를 뻣뻣이 든 채로 ‘덤빌테면 덤벼’ 라는 포즈로 걸었다고 했다.
20대 초반의 나는 겨우 대여섯살 위인 선배들처럼 어서 나이가 들기를 원했고, 30대와 40대를 거치면서는 주위의 50대 친구들이 겪는 갱년기가 나와는 무관하다고 무시하곤 했었다. 50대 초에 맞은 경미한 갱년기는 운좋게 흔히 찾아온다는 핫 플래시나 우울증도 피해갔다. 그리고, 60이 되던 초가을에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하나님께 보냈다. 사별은 당연히 내 인생의 가장 큰 변화 (life changing event) 였고, 인생을 정리하는 계기로 나의 버켓 리스트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했다.
작심삼일이 되곤 하지만, 늘 해오던 오래 묵은 서류들을 정리하다 20년 전인 2002년 11월 말에 혼자의 다짐인 듯한 짧은 글을 발견했다. 아직 50살이 되지 않은 나는 의지했던 선배의 장례식에서 어지럽도록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며 인생의 허망함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썼다.
삶과 죽음의 차이가 무엇이기에 나를 이토록 흔들어 놓았는지 고민하며 소용돌이 치는 생각들을 멈추게 하는데 거의 한달이 걸렸다며, 잠시의 여유도 없이 앞만 바라보며 20년을 살아와 숨이 차다고 했다.
이어서, 젊음은 사람을 도도하게 만들고 자신감에 넘쳐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고 자책도 했다. 한가락 두가락 생기던 흰머리가 묶음이 되어 한눈에 띄게 되고, 어느 날 눈이 침침해져 책을 읽기가 힘이 들어 눈꼽이 끼었나 하고 열심히 눈만 비빈 적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앞만 보고 달려온 내게 뒤도 돌아보고 옆도 살펴보자고 했다.
내가 ‘성장’을 멈춘 시기는 이때였을까? 언제가 되었든 ‘성장’을 멈추었다면, 이제는 ‘성숙’한 시니어로 가족과 친구들, 주위의 지인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포용해야지.
<최향남 / 몽고메리칼리지 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