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중에 라떼 이즈 호스(Latte is Horse), “나 때는 말이야”가 자주 등장할 수 있는 세대라면 공통의 관심사는 무엇보다 건강일 가망이 크다. 모여서 밥 먹고, 커피 한잔하다 보면 어느 새 화제가 그쪽으로 흘러 갈 때가 많다. 여기저기 고장나는 데가 늘고, 보고 듣는 것도 그쪽이 많기 때문이다.
건강 다음, 공동 화제 2위는? 아마도 정치, 그 중에서 한국정치가 아닐까 싶다. 요즘 같은 대통령 선거 때는 더욱 그렇다. 한인들의 정치 관심, 그 중에서 장년 남성들의 정치 관심은 각별하다. 미국에 살지만 한국 정치에 아는 것이 많다. 나름의 논리를 갖춘 아마추어 정치 평론가도 적지 않다
현실이 너무 극적이면 연속극이 재미가 없다는데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지 모르겠다. 서울의 온갖 똑똑하고 말 잘하는 사람들이 뒤엉켜 연출하는 대통령 선거판은 말 그대로 각본 없는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반전의 속도감이 장난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새 판이 펼쳐져 있다. 이삼 일만 지나면 지금 가장 뜨거운 이슈는 구문이 되기 일쑤다.
달랑 핸드폰 하나를 들고 출동하는 1인 언론 기업이라고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거대 언론 보다 더 효과적으로 후보의 자질을 검증했다는 평을 듣는 유튜브 방송도 있다. 다른 언론들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이슈를 터뜨리는 인터넷 매체도 있다. 공신력을 이유로 장외 취급을 받던 인터넷 방송과 이른바 메이저의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 기성 언론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으나 너도나도 유튜버인 한국의 언론 지형은 그렇게 바뀌고 있다.
지금은 녹취록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상대방 동의 없는 도둑 녹음도 대화 당사자가 했다면 합법인 사회다. 녹음기가 비수가 될 수 있다. 너도나도 품속에 품게 된다. 전화 통화의 녹음은 다반사. 재벌 부인부터 갑질이 가능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각계각층의 녹취 망신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 후보나 그 부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녹취가 공개된다는 것은 화장기 없는 민 낯을 들키는 일이다. 고스란히 밑바닥 본전이 드러나게 된다. 당사자로서는 땅을 칠 노릇이겠으나 적에게는 드문 호재, 제3자에게는 관음증을 유발할 수 있다. 눈에는 눈, 녹취에는 녹취로 대응에 나선 것이 지금 한국의 대선판이다.
여당 후보의 녹취 내용은 이미 알려진 것들이다. 하지만 막상 육성으로 듣게 되면 그 파괴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이 사람은 아니야”라고 고개를 저을 수 있다. 그만큼 찰지다고 해야 할까. 전후 사정을 거론하며 엄호하는 지지자도 있으나 “웬만해야 지” 하며 손절한 사람도 있다.
야당 후보 부인의 쌩얼은 처음이다. 청와대 행사와 기자회견 때 공중 앞에 선 적이 있으나 그때는 잘 다듬어진 모습. 연출없이 드러난 민 낯은 그 사람이 이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다르다.
내용을 두고는 ‘한 방이 없었네’ ‘있었네’ 설왕설래지만 분명한 한 가지, 분별력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인터넷 기자를 언제 알았다고 누님, 동생 해가며 할 말, 안 할 말 다 털어 놓았는지-. 쉴드를 쳐야 하는 입장인 사람들도 입맛이 쓸 것이다. 무슨 대단한 내면의 우아함이나 명석한 사리판단력 등이 대통령 부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라고 해도 그 천박한 ‘강남 스타일’의 현실 인식과 판단은 걱정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선거에서 어차피 해외 거주자 대부분은 국외자일 수밖에 없다. 선거권이 있고, 유권자 등록을 했다고 해도 무슨 수로 그 먼 투표소를 직접 찾아가 한 표를 행사할 것인가. 기왕 이런 처지라면 어느 쪽을 지지하든 이번 선거에는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되도록 감정이입을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게 괜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마음을 비우면 한국 선거는 깨소금이 될 수도 있다. 이만큼 흥미롭고 박진감 넘치는 정치 드라마가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통령 선거 10배 즐기기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