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폴 크루그먼 칼럼] 비트코인과 MAGA 신봉자들의 기묘한 동행

2022-01-19 (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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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주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지명을 노리는 트럼프 신봉자 조슈 만델은 최근 트윗을 통해 자신의 세 가지 신념을 제시했다. “오하이오는 기독교와 가정, 그리고 비트코인 친화적인 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에 대한 보수주의의 전통적 강박증처럼, 우파 극단주의와 비트코인 사이에도 그 이상의 강력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비트코인에 열광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허튼소리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암호화폐의 효용성이나 가치 자체를 부인해선 안 된다. 때론 잘못된 이유로 옳은 일을 지지할 수도 있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검증을 거친 연구결과 때문이 아니라 흰 가운을 걸치고 전문용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겉모습에 혹해 백신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합의를 수용한다. 어찌되었던 암호 화폐 운동에는 분명 컬트적인 측면이 있고,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암호 화폐의 경제적 측면부터 살펴보자.


필자는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로 접어든 만큼 디지털 화폐를 사용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디지털시대에 걸 맞는 결제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필자 역시 마우스를 클릭하고, 데빗 카드를 긁거나 셀폰의 버튼을 누르는 방법으로 대금을 지불한다. 뉴욕 시 어느 곳에서건 볼 수 있는 노점상들로부터 과일과 야채를 사기 위해 필자는 항상 1달러짜리 지폐 몇 장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 그러나 요즘엔 벤모를 받는 노점상이 적지 않다.

이런 모든 결제는 그러나, 제 3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에 깔고 있다. 데빗 카드, 애플 페이와 벤모를 이용한 결제가 통용되는 이유는 이들이 은행계좌와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온전한 목적은 ‘2008 암호 화폐 백서’에 명시되어있듯 제 3자에 대한 신뢰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처럼 암호화 기법을 사용하는 결제방식을 인정하는 목적은 금융기관의 개입을 배제한 개인 대 개인(P2P) 결제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다.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은행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인가? 암호 화폐 회의론자들은 크립토 커런시가 기존의 결제방식보다 더욱 효율적이고 소요 경비 또한 저렴하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간단한 예를 제시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필자는 암호 화폐 지지자들로부터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비트코인을 사용할 경우 자금흐름 추적이 거의 불가능해 불법적인 거래를 포착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암호 화폐 사용에 따른 합법적 이점에 대해선 들은 바가 전혀 없다.

빠르게 변하는 인터넷 기준으로 볼 때 비트코인은 꽤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3년 동안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 화폐는 상품과 용역 구입에 사용되는 교환수단이라는 전통적인 돈의 역할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구체적인 수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암호 화폐를 이용한 대다수의 거래는 일상적인 경제활동보다 투기에 집중되어있다.

현재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시장가치는 1조 달러를 웃돈다. 수요가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투자가들이 경쟁적으로 암호 화폐를 구입하는 주된 목적이 무얼까? 자산가치 보호다. 그들은 정부가 마구잡이로 돈을 찍어내 그들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를 떨어뜨릴까 조바심을 친다. 블룸버그의 최신 기사에 따르면 억만장자들은 화폐가치가 폭락해 ‘종이쪽지’가 되어버릴 것에 대비해 암호화폐를 구입한다. 하긴 우리가 알고 있는 초인플레이션 사례만 해도 57건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정치·사회적 혼란의 와중에 발생했다. 이처럼 불안정한 환경에서 온라인으로 비트코인을 현금화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자신만이 기회를 놓친 채 뒤쳐질 수 있다는 고립공포감(FOMO)도 비트코인 열기에 연료를 제공한다. 사실 비트코인은 최적의 마케팅 요소를 갖고 있다. 우선 어감자체가 첨단 과학적이고 초현대적이다. 여기에 정치적인 피해망상증까지 끼어들면서 비트코인 열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비트코인 거래로 양도소득을 챙긴 경험이 있는 투자자들은 정치적 동기 없이도 선뜻 암호 화폐 투전판에 뛰어든다. 게다가 새로 뉴욕시장에 선출된 에릭 아담스 같은 공인들은 미래지향적인 인물처럼 보이기 위해 비트코인을 한껏 띄워 올린다.

그렇다면 이처럼 혼란스런 지지근거는 비트코인이 내부폭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이미 수 세대 전에 교환 수단으로서의 금의 기능은 중단됐지만 그 가치는 붕괴하지 않았다. 불법 거래도 비트코인 인기의 중요 요인 중 하나이다. 평범한 소비자들은 고액권을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현재 유통 중인 100달러짜리 지폐는 미국 전체 통화량의 80%에 해당하는 1조6,000억 달러에 달한다. 사람들은 벤자민의 초상이 그려진 100달러 권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불법적인 활동에는 고액권보다 암호 화폐가 “안전하다.”


이보다 먼저 짚어보아야 할 게 있다. 비트코인과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사이의 연합이 점차 깊어지는 이유가 무얼까?

필자가 보기에 불신조장에 초점을 맞추는 현대의 우파는 비트코인이 신뢰(trust)에 기반을 두지 않는 금융시스템을 만들어낼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에게 코비드는 거짓이다. 선거는 도둑맞았고, 가주의 산불은 기후변화와 무관하다. 캘리포니아 주의 초대형 산불은 로스차일드가 조종하는 우주 레이저 광선에 의해 발화됐다.

이런 문맥에서 MAGA파 정치인들이 은행을 통한 통화시스템의 종식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통화 남용의 증거는 없지만 극단적 우파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론은 이렇다. 암호 화폐와 연관된 경제적 이슈가 분명히 존재하긴 하지만 비트코인의 급격한 부상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절벽 끝으로 몰아세운 광범위한 정치적 광기와 더욱 깊숙한 관계를 맺고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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