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일본인 최초 미국 이민자 만지로의 인생역정
2026-05-08 (금) 12:00:00
최윤필 한국일보 기자
일본 도사번(土佐藩, 현 고치현) 나카하마의 16세 소년 만지로(1827~1898)가 1843년 5월 7일 미국 땅에 상륙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어선을 탔던 그는 14세 때 풍랑을 만나 동료 선원 네 명과 함께 한 무인도에 표착했다가 약 5개월 뒤인 41년 6월 미국 포경선 ‘존 하울랜드(John Howland)호’에 구조됐다.
만지로 등은 포경선원들과 함께 약 2년간 태평양 고래잡이 항해를 하며 영어를 익혔고, 배가 모항으로 향하던 중 나머지는 하와이에 내렸지만 선장 윌리엄 위트필드와 양부-양아들처럼 가까워진 만지로는 그의 고향 매사추세츠주 페어헤이븐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는 일본인 최초 미국 공식 이민자 ‘존 만지로’가 됐다. 페리 제독의 흑선이 일본에 상륙(1853년)하기 전, 그러니까 에도 막부의 쇄국정책이 완강하던 때였다.
만지로는 선장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며 영어와 수학, 측량-항해술 등을 배웠고, 포경선 선원으로 취업해 부선장까지 지냈다. 그는 무척 총명하고 대담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때 금을 캐 모은 돈으로 증기선 어드벤처호를 구입한 그는, 표류한 지 꼭 10년 만인 1851년 일본으로 귀국했다. 막부는 서양 문물에 해박한 그를 사무라이 신분으로 우대하며 그에게 고향 이름에서 따온 나카하마(中濱)라는 성(姓)도 하사했다.
만지로는 페리 함대와의 협상과 이후 미-일 통상조약 체결 과정의 통역사 겸 실질적인 협상가로 일본의 평화적 개항-개국에 기여했다. 표류기와 미국 체류기, 영어회화서와 서양 항해술서 등 여러 책을 집필했고, 도쿄대 전신인 가이세이 학교에서 강의했다. 훗날 메이지 유신의 주역인 정치인 사카모토 료마 등의 개혁 구상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페어헤이븐과 고치현 도사시미즈시에는 각각 위트필드-만지로의 우정의 집, 만지로 기념관 등이 있고, 고치현과 페어헤이븐은 자매도시로 교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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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한국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