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볼티모어시 북쪽에서 오래 살다가 남편의 직장 이전으로 웨스턴 메릴랜드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곳은 메릴랜드주와 웨스트버지니아와 펜실베이니아 주들이 만나는 교통 요충지였고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중소도시였다.
포토맥 강의 발원지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고 애팔래치안 산맥이 지나가는 계곡에 자리잡은 작은 도시로 물맛 좋고 경치가 수려한 곳 이었으며 누구나 매료되는 가을 단풍이 유명한 곳이었다. 마치 유럽의 어느 소도시에 온 것처럼 주민 거의가 백인들 일색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웨스트버지니아 주민들이 너무나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보고 여기가 과연 미국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옛날 한국에서 미군들과 국제결혼한 한국여인들이 적잖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월이 흘러 가면서 우리들은 같은 한국인이라는 끈끈한 정으로 봄이 오면 이 산 저 산으로 취나물을 캐러 다니고 고사리 밭에도 가곤 하였다. 산으로 겹겹이 둘러 쌓여 있는 동네라 땅속에서 혹은 언덕의 여기저기에서 샘물이 흘러나와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곳에는 야생 미나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고 숲의 향연이 펼쳐지는 산골동네라 산삼만 캐는 백인 심마니들도 여럿 있었다.
그리고 포토맥강으로 흘러가는 깊은 계곡에 상당한 규모의 큰 제지공장이 있었는데 하루에도 수십 톤의 거목들이 트럭에 실려 공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종이를 만들기 위해 계곡의 물과 나무들이 합성해 종이로 재탄생 되는 곳이었다.
오늘 아침 내가 사용한 컴퓨터 종이도 어제 읽은 책도 물과 나무를 이용해 종이로 만들어 지면서 그후 모든 것은 활자로 인쇄하는 것이 가능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자연이 주는 물과 나무들인가!
우리 인류는 지구촌에 살면서 이 지구촌의 수많은 자원들을 이용해 오늘날까지 왔는데 그 중에서도 나무들은 우리들의 삶에 깊이 연관돼 있다. 나무는 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며 목재와 연료로 사용되어 왔고 우리들이 먹는 과일과 각종 열매 등 대부분은 나무에서 얻는다 .
또한 나무들은 여러 동물들의 생명의 보금자리이자 안식처를 제공해 준다. 아마도 세상의 많은 나무들은 각자 하고싶은 얘기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문명도 나무에서 비롯 되었다고 헤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시고 금단의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한 그것 또한 나무에서 시작 되었다. 나무의 나이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수령이 아주 오래된 나무들에서 나이테를 측정하고 로마제국과 몽골제국의 흥망성쇠까지 밝혀내고 유수한 세월속의 기후변화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나무는 식량과 물이 풍부할 때는 행복해지므로 그 해에는 무럭무럭 자라 옆으로 위로 나이테를 넓혀 나가지만 가뭄이나 한파가 닥치면 좁은 나이테를 만든다. 비가 많이 내리면 넓은 나이테를 만들고 가뭄이 든 해는 나이테 사이가 좁다.
나무의 행복은 날씨에 크게 좌우된다. 1998년 기후학자들은 지난 1000년 동안의 나이테를 이용해 기후변화를 연구하였는데 20세기에 지구온난화가 극심 하였다는 것을 나무들은 나이테 안에 기록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조용하게 한자리에 평생 서 있는 나무들은 각자의 나이테 속에 기후변화와 문명의 발자취까지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흥미롭고 경외감마저 든다. 오늘날의 나무의 현재는 우리들의 과거이며 다가올 지구의 미래이기도 하다.
인간과 나무들이 서로 공존하고 공생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무가 역사 너머의 세월과 기후변화와 문명에 대한 기록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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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자 / 엘리콧시티, MD>